〈변태보감〉VS〈여우와 개〉

중앙일보

입력

AV매니아라면 누구나 AV의 소재가 빈약하다거나 스토리가 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AV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 제작되는 일반 극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단점들에 대해 영화를 제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겠지만, 고민의 양과 질에 비해 작품의 그것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막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사회적 도리와 체면을 생각하여 자유로운 상상력을 막는 사회적 금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껏 남녀간의 정상적인 섹스가 아닌 동성간의 섹스나 페티쉬(성적 감성을 일으키는 대상물)를 이용한 섹스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은유나 암시를 통해서만이 조금씩 표현 된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그러한 표현들은 그런 행위 자체를 변태적이고 엽기적인 순간을 표현할 때 쓰거나 한낱 우스꽝스런 인물들을 만들어 낼 때 극히 단순하게 이용되곤 했다.

영화〈거짓말〉이 개봉관에 상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야할까? AV에서 이제껏 금기 시 되어왔던 설정들이 하나씩 그 실체를 벗고 있다.

지금 소개할 AV는 그 중 두 편.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치고 나가는〈변태보감〉과 묘한 제목이 야릇한 인상을 주는〈여우와 개〉.

<변태보감〉이라는 제목으로 보자면 지난 달 소개했던 드라마〈허준〉의〈동의보감〉을 연상시키지만, 상업적인 측면에서 제목만 슬쩍 차용했을 뿐〈동의보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p>

형식상으로는 액자 구성을 취하면서 포르노 작가와 그의 보조 작가가 쓰는 이야기들이 두 개의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구성상 내용을 따라가기 쉽지 않은〈변태보감〉에 비해 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들간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있는〈여우와 개〉.스토리를 따라가기는 쉽겠지만, 그들이 벌이는 섹스 행각은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울 듯 하다.

우선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들어있는〈변태보감〉. 플롯이 여기저기 꼬여있어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해한 만큼만 소개해 본다.

누드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와 그의 모델. 두 사람은 작업을 위해 만났지만, 서로의 욕정을 푸는 관계로 발전되고, 그 둘 사이를 못 마땅이 쳐다보는 사진작가의 애인 애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진작가는 애화와 섹스를 하지 않는다.

그런 애화가 욕정을 풀기 위해 찾는 곳은 변태 행위예술가의 작업실. 온갖 페티쉬의 기구들이 방바닥에 널려 있고, 예술인지 외설인지 알 수 없는 그림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그곳에서 애화는 욕정을 달래고, 예술가는 쾌락에 빠져있는 그녀를 보며 그림을 그린다.

장면이 바뀌면 그곳과는 또 다른 공간. 포르노를 만들려고 하는 남자와 세계적인 포르노 스타가 꿈인 여자가 서로 만나 창조적 작업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상황은 알고 보면 포르노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와 그의 보조 작가가 함께 만들어내는 이야기.

서로 이성간인 그들도 소설을 쓰며 점차 서로를 탐닉해가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초반부터 내용의 흐름을 예측할 수 없는〈변태보감〉.

〈변태보감〉과는 달리 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5명의 비정상적인 일상을 담은〈여우와 개〉. 정상적인 섹스를 할 수 없는 여자 상희, 노처녀 히스테리에 걸린 그녀의 과장 정숙, 상희를 짝사랑하는 나머지 커피에 자신의 정액을 섞는 등의 변태적 행위를 일삼는 그녀의 동료 세진, 그리고 과장과 같은 아파트에 살며, 맡은 일은 잘 하지만 이유 없이 자주 사무실을 비우는 다른 동료 도식은 서로 같은 직장,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다.

어느 날 미희라는 여인이 새로 입사하게 되고, 그 날도 사무실을 비운 도식이 여관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나오는 어떤 여인을 자신의 집으로 납치해 손발을 묶고, 입에 재갈을 물리는 등 도식의 변태성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다시 액자 소설의 형식을 취하는〈변태보감〉의 뒷 얘기. 애인과 모델의 관계를 참지 못한 애화는 모델의 비정상적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행위예술가를 소개시켜 주고, 그를 찾아간 모델은 그와 그의 조수 모두를 변태적 욕망의 제물로 만들어 죽여버린다. 이를 본 애화는 그러한 엽기적인 행각을 바라보며 미쳐버린다.

한편 포르노 만들기에 혈안이 된 남과 여. 남자는 결국 자신들의 섹스를 비디오에 담아 팔기에 이르고, 이를 지켜보던 여자는 남자를 살해하게 되는데...

소설 쓰기에 집중하기 보다 서로를 탐닉하는데 빠져버린 포르노 작가와 그의 보조 작가는 이렇듯 아무렇게나 결말을 내버리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에 의해 쫓기게 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페티쉬라는 참신한 소재, 액자 형식을 취하면서 엮어 가는 특이한 이야기 전개, 배우들의 인상적인 몸 연기-특히 누드 모델 역을 맡은 채영의 화려한 허리 놀림은 예술의 경지를 보는 듯 하다- 등이 인상에 남지만, 섹스 장면에서의 단순 주입식 앵글은 여전히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도식의 변태성으로 흥미를 끌어가는〈여우와 개〉. 도식이 납치한 여자를 데리고 양초와 밧줄, 채찍 등으로 욕정을 풀어 가는 사이, 상희는 새로 입사한 미희의 집에서 그녀가 바이섹슈얼(양성애자)임을 알게 되고, 서로 새로운 욕망의 경지를 맛보게 된다.

다음 날 업무 차 도식의 집에 들른 과장 정숙은 도식의 행각을 보게되고, 도식의 또 다른 희생양이 된다. 회사에 과장과 도식이 나오지 않자 걱정이 된 동료들은 도식에게 전화를 하게 되고, 그 전화를 납치된 여자가 받게 되면서 상희와 미희는 도식의 집을 찾아가게 된다.

집에 도착한 상희와 미희. 도식의 진실을 알게 된 그들은 도식을 잡아 쓰러트리고, 그를 정숙의 노리개로 만들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이후 좋은 관계를 맺는 정숙과 도식, 그리고 상희와 미희 두 커플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사도 메저키즘(피가학적 음란증)을 비롯, 바이섹슈얼, 페티쉬의 도구 등이 영화의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주는 한편, 배우들의 현란한 몸놀림과 더 이상 바랄게 없는 확실한 앵글-음모를 정리해 과감하게 찍어낸 카메라 앵글은 압권이다-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필자의 모자란 설명이 아쉬운 AV. 한번 보기를 강추(강력 추천)!

이제라도 금기시 되어왔던 부분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 찬성이지만,〈거짓말〉과 같은 영화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AV 스스로가 사회 통념과 터부를 깨고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는 용기를 낼 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