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성 1호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 재추대 … 이번엔 김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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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군부대를 방문해 쌍안경으로 육해공 합동 타격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15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 사진을 방문 날짜와 장소를 밝히지 않은 채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로이터]

“농축우라늄 활동 및 핵·미사일 시험 발사를 중단하기로 했다”(2월 29일).

 “광명성 3호를 발사하겠다”(3월 16일).

 김정은의 북한이 조선중앙TV를 통해 국제 사회에 보여준 상충된 모습이다. 경희대 권만학(국제학) 교수는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 지휘체계가 안착되지 않았다고 본다”며 “협상파인 외무성과 강경파인 군부의 갈등과 분열이 원인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또 정부 고위 당국자는 “4·15 김일성 생일 100주년 축제용 외에는 달리 설명이 되지 않는다. 북한은 내부지향적인 나라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미국을 방문, 유화발언을 쏟아낸) 이용호 외무성 부상이 미사일 발사를 전혀 몰랐거나, 완벽하게 쇼를 했거나 둘 중 하나”라고 했다. 내부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1998년에도 8월 31일 광명성 1호를 쏘아올린 뒤 9월 5일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에 재추대해 권력승계를 매듭지었다. 북한은 올 4월 노동당 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를 앞두고 있다. 광명성 3호 발사와 김정은의 총비서 또는 국방위원장 추대를 연계할 것으로 관측되는 이유다.

 이번 돌출 행동을 북한의 협상전술로 해석할 수도 있다. 북한이 수십 년간 축적한 고도의 대미협상 전술의 연장선이라는 분석이다. 퇴로 없이 위기를 고조시킨 채 버티는 ‘벼랑끝 전술’, 하나의 쟁점을 잘게 쪼개 반대급부를 계속 얻어내려는 ‘살라미 전술’ 등을 교묘하게 뒤섞었다는 해석이다. 특히 얇게 잘라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 살라미처럼 협상을 최대한 세분화해 단계마다 상대방으로부터 최대한의 보상을 얻어내는 ‘살라미 전술’이 이번 북·미 합의와 미사일 발사 예고에 모두 반영돼 있다는 거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대내용 목적이 3분의 2, 나머지 3분의 1은 대미 협상용”이라며 “대선을 앞둔 오바마 미 행정부에 더 큰 것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술”이라고 분석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장거리 미사일의 진전된 기술을 과시해 미국이 북·미 담판에 나오도록 압박하는 전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미사일 발사 발표는 이런 협상술을 염두에 두고 김정은이 미국을 상대로 휘두른 첫 펀치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북한은 18일 “국제사회가 합의 위반 운운하며 적대 행위를 하고 있다”며 향후 미국과의 대립각을 예고했다. 2·29 베이징 합의는 미국 입장에선 의미가 적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 들어 북한과 처음 이룬 합의인 데다,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북핵 대표가 김정일 사후 북한과 처음 협상해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순순히 합의하고 대화를 주장한 북한의 모습에 협상진이 고무됐던 게 사실이다.

 지난달 23, 24일 베이징 회담장에서 글린 데이비스는 “위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발사해도 분명히 합의 위반이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이에 김계관은 말이 없었고, 이에 대한 양측의 명시적인 합의 없이 워싱턴과 평양은 합의문을 동시에 발표했다. 이로써 미국은 협상의 전제인 신뢰가 깨졌다고 보고 있다.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수차례 ‘신뢰’란 표현을 썼다.

 이런 기초적인 신뢰 문제 탓에 미국 외교가에선 “북핵은 미 외교관들의 무덤”이란 얘기가 나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장관의 신임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 등 북핵을 담당한 인사들이 대부분 북한의 합의 파기로 곤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선례를 감안해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원의 북한 영변우라늄 사찰에 적극성을 보이며 국면전환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미국은 2·29 합의는 물론이고 대북정책 전반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맺은 어떤 합의도 한순간에 구겨진 종잇조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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