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식의 터치다운] 빛바랜 트로잔스 홈커밍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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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적은 상대팀이 아니라 바로 자기자신.

새천년 시즌 개막이후 3연승으로 잘 나가던 남가주대(USC) 트로잔스가 28일 북가주 라이벌 UC버클리 골든 베어스와의 88번째 대결에서 또다시 패배, 5연패로 팀 최다연패 기록(6연패)에 한 경기만을 남겨두게 됐다.

120년의 학교 역사상 USC가 수립한 최다연패 기록은 지난 1991년 래리 스미스 헤드코치(현 미조리 타이거스)가 세운 6연패(시즌 3승8패)다. USC 헤드코치 폴 해킷은 이제 한번만 더 지면 타이, 2번이면 신기록을 수립하는 셈. 10월 한달동안 한 1승도 기록하지 못한 해킷은 지난해에도 5연패를 기록, 이번이 두번째 치욕인 셈이다.

반면 또다른 고향팀 UCLA 브루인스는 애리조나 와일드캣츠에 역전승을 거두고 5승3패로 연말의 보울진출을 사실상 확정,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최고권위의 로즈보울에 나가지 못하면 시시한 보울은 나가나마나”라고 치부하는 LA팬들의 정서를 감안하면 입장은 USC와 피차일반.

5만4,000명이 입장한 28일 USC-UC버클리의 경기는 공교롭게도 트로잔스의 홈커밍데이(동문의 날)행사로 나이 지긋한 60∼70대 원로 남녀 선배들이 스탠드를 메웠다. 1932년·1984년 LA올림픽 주경기장이었으며 1967년1월15일 제1회 수퍼보울을 개최한 유서깊은 LA메모리얼 콜로세움 경기장은 진홍빛의 USC칼라로 화려한 물결을 이뤘으나 팀의 패배직후 험악한 욕설장으로 변모했다.

올시즌 대학풋볼의 특징은 전통명문의 몰락이라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서부지역의 대표주자인 USC의 부진은 오랫동안 남부최강으로 군림한 앨라배마 크림슨 타이드의 추락과 함께 비교된다. 1960∼1980년까지 각각 4대 메이저보울인 로즈보울·슈거보울에서 밥먹듯 우승한 두 학교는 이 기간동안 무려 11번의 전국챔피언 타이틀을 합작, ‘아메리카의 풋볼학교’란 호칭을 받기에 이르렀다.

특히 60년대까지 흑인선수를 뽑지않는등 악명높은 인종차별 정책으로 비난받던 앨라배마는 재기를 노린 올해 무명의 센트럴 플로리다에게도 홈에서 덜미를 잡히는등 3승5패로 올시즌을 완전해 망쳐 코칭스태프의 교체설이 검토되고 있다.

뉴욕팀끼리의 ‘지하철 시리즈’를 씁쓸하게 지켜본 LA스포츠팬들은 “야구·아이스하키·농구는 몰라도 ‘미국의 자존심’인 풋볼만큼은 서부가 최고”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운동을 포함, 각종 클럽활동은 도외시한채 학점만 따지는 동부지역에 비해 “전인교육에 관한한 서부가 으뜸”이라는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

LA타임스를 비롯한 현지언론은 “전통이란 세우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욱 어려운 법”이라며 고향팀 USC·UCLA의 막판 분발을 촉구하고 나섰다. 어느 학교가 마지막에 유종의 미를 거둘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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