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의 딜레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2호 38면

이것은 전부 꾸며낸 이야기다. 만일 이 글에 나오는 내용이 특정 인물이나 사실과 일치한다면 그것은 우연에 불과할 뿐 그 인물이나 사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명문 중학교를 다녔다. 예전에 시험을 쳐 학생을 뽑을 때는 수재들만 가는 학교로 이름이 높았다. 내가 들어갈 무렵에는 추첨이었는데도 그 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아버지가 기뻐하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중학교 3학년 봄이다. 인생의 봄날, 사춘기란 봄을 생각하는 시기다. 봄에는 역시 봄꽃도 생각나고 봄 그림도 생각나게 마련이다. 그 봄에 봄을 그린 책들이 마치 교정에 봄꽃이 피듯 학교 전체에 만발했다. 물론 나도 봤다. 학교에는 나쁜 친구가 있다. 나쁜 남자나 나쁜 여자처럼 친구 역시 나쁜 친구가 매력적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나쁜 친구였다. 우리는 나쁜 친구의 집에 모여 어른들 몰래 봄 그림을 보았는데 그것을 보자 봄꽃들이 온몸의 숨구멍을 열고 마구 필 것 같았다. 어른이 된 것 같았다.

하루는 조례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다들 눈을 감으라고 했다. 선생님이 말했다. 너희들이 요즘 나쁜 책을 보고 있는 걸 다 안다. 그런 책을 왜 ‘빨간 책’이라고 하는 줄 아느냐? 그건 간첩들이 찍어내기 때문이다. 장차 나라의 동량이 될 너희들이 한창 공부해야 할 때 그런 책을 보고 타락해서 성의, 김일성의 노예가 되게 하려고 너희들을 빨갱이로 만들려고, 그래서 결국엔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려고 북한 공산당이 대남적화전략으로 찍어내는 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우리는 그냥 사춘기일 뿐인데 봄을 본 것뿐인데. 선생님은 말했다. 여러분 앞에 놓인 종이에 언제 누구와 무슨 책을 보았는지 솔직하게 다 적어라. 우리 학교 교훈이 “젊은 신사가 되자”이다. 나는 여러분이 젊은 신사가 되길 바란다. 신사도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사라면 자신의 실수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할 것이다. 솔직하게 적은 학생은 가벼운 벌을 내리고 용서하겠지만 사실을 숨긴 학생은 정학을 시키겠다. 자, 눈을 뜨고 쓰라.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무죄다. 나는 말하지 않아도 우리 중 누군가 말하면 큰 벌을 받을 것이다. 나는 친구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민수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민수는 나쁜 친구니까. 집과 책을 제공한 친구니까. 정현이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녀석은 우리 중 가장 배짱이 두둑한 친구다. 선생님의 협박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종복이는 불안하다. 종복이는 단지 우리와 어울리기 위해 그 책들을 봤다. 종복이는 착하고 거짓말을 싫어하는 아이다. 아까 눈을 떴을 때 나도 모르게 잠깐 종복이 쪽을 봤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무래도 종복이는 다 적을 거야. 아니다. 종복이는 나쁜 친구들인 우리를 믿을 거야. 입학 때 대견스러워하시던 아버지 얼굴이 잠시 떠올랐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선생님이 종이를 거둬 교실을 나간 후 민수와 정현이와 나는 종복이 자리로 갔다. 우리는 종복이에게 물었다. “너 다 썼지?” 그러나 사실대로 다 쓴 사람은 민수와 정현이와 나였다. 우리 중 종복이만 그런 책을 본 사실이 없다고 썼다.

우리 셋은 반성문 쓰는 벌을 받았고 종복이는 정학을 받았다. 우리를 믿은 죄로.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