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의 독선적 리더십인가 단원들의 모럴 해저드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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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호 01면

KBS 교향악단(상임지휘자 함신익). 56년의 역사에다 91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한때 국내 최정상이었던 교향악단이다. 구성원의 면면도 화려하다. 2010년 취임한 상임지휘자 함씨는 건국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대 음대 교수가 됐다. 1995년부터 학교 오케스트라인 ‘예일 필하모니’를 이끌어온 자수성가형 음악인이다. 인기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실제 모델로 ‘함토벤’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단원들도 서울대 40%, 연세대 21% 등 국내 명문 음대 출신들이 줄줄이 포진하고 있다. 연주자들 연봉은 국내 최고 수준(평균 5300만원)이다. 원래는 계약직이었지만 2009년부터는 사실상 정규직인 무기계약직 자격을 획득해 모든 단원들이 61세까지 정년을 보장받는다. 단원들은 97년 KBS노조에 가입해 노조원이 됐다.

56년 만에 정기연주회 첫 취소 KBS교향악단에 무슨 일이…

하지만 요즘 KBS 교향악단은 최악이다. 이 악단의 연간 운영비는 100억원가량이다. 그러나 티켓 판매와 협찬금 수입은 16억원에 불과하다. 정기 회원 수가 한때 2000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적자는 국민이 세금으로 낸 시청료로 메우고 있다. 서울시향이 2006년 정명훈씨를 지휘자로 영입한 뒤 치열한 경쟁 시스템을 통해 연주의 질을 높이며 매진 사태를 빚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 8일과 9일로 예정됐던 제666회 정기 연주회는 취소됐다. 창단 이후 최초의 사태다. 상임지휘자인 함씨가 “단원들이 연습이 안 돼 있어 도저히 연주를 할 수 없다”며 취소를 결정했다. 이미 팔았던 표는 환불조치 했다. 하지만 단원들은 “실력 없는 함씨로부터 지휘를 받을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서로를 향해 “실력이 없다”고 공격하는 형국이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KBS가 감사를 통해 회사 규정을 어긴 단원들을 징계하면서부터 다. KBS 측은 “감사를 해 보니 교향악단 단원들이 사규를 많이 어기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외부 출강은 주당 8시간까지만 허용되는데 심지어 20시간 이상 출강하는 단원들도 있더라는 것이다. KBS는 수석 1명을 직위 해제해 일반 단원으로 강등하는 등 모두 11명을 징계했다. 또 “오디션을 실시해 단원들의 실력을 검증해야겠다”며 함 지휘자에게 오디션을 실시토록 했다. 그러나 단원들은 “사실은 함씨가 단원들을 장악하려고 회사 측에 오디션을 요구했다”며 ‘비상대책 위원회’를 꾸렸다.

올 1월 말 치러진 오디션에는 평가 대상자 77명 중 8명만 응했다. 이때부턴 지휘자 함씨와 단원들 갈등에다 오디션 참가자와 불참자 사이의 반목까지 겹쳤다. 불참 단원들은 가슴에 ‘함(신익) 아웃’이란 리본을 달고 연습실로 나왔다. 연습실엔 ‘낙하산 지휘자 사퇴’라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지휘자와 단원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그런 식으로 신년 음악회를 했다.

3월 정기 연주회를 하루 앞둔 지난 7일. KBS 본관 5층 연습실 부근 휴게실에서 오디션 참가 단원과 불참 단원들이 충돌했다. 한 여성 단원은 오디션을 받은 남성 단원 얼굴에 물을 끼얹으며 “그렇게 사니까 좋으냐. 이 ××야”라고 했다. 연습실 앞 사무실에선 한 현악단원(50)이 악단 행정총무에게 “너 죽여버린다. 너 ‘순간 살인’이라는 거 있지. 지금 확 ××버린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날의 충돌로 단원 4명이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첫 리허설이 있었던 5일에도 충돌이 있었다. 회사로부터 출연정지 징계를 받은 악장이 자리를 차지해 함 지휘자가 대타로 불러왔던 연주자는 자리에 앉지도 못했다. 어떤 단원은 함씨를 향해 “개새끼”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 다음 날에도 충돌은 계속돼 단원 2명이 병원으로 후송됐다. 외부의 객원 연주자 8명은 연주를 못하겠다며 돌아갔다. 한 여성 객원 연주자는 “먹은 것 다 토하고 온몸이 저려서 앉아 있지도 못하겠다”며 “더 이상 못하겠다”고 호소했다. KBS는 14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사상 처음으로 연주회 취소 사태를 빚은 KBS 교향악단의 문제를 논의했다.
관계기사 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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