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도둑맞은 사인과 훔친 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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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두산의 한국시리즈가 사인 훔쳐보기로 과열되고 있다. 사인의 중요성이 그만큼 큰 때문이다. 야구를 전쟁에 비유한다면 사인은 명령이 전달되는 체계이다. 따라서 사인의 노출은 경기결과를 흔들 수 있는 중요사안이다.

사인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공격과 수비의 경우다. 공격시에는 통상 벤치에 앉아있는 감독이 3루 코치에게 사인을 보내고 다시 타자와 주자에 전달되는 경로를 거친다.

이 때 타자와 주자는 사인을 본 뒤 수신을 확인하는 동작을 취하게 되고, 이를 보지 못했을 경우엔 재송신을 요구하는 동작을 취한다.

공격시의 사인은 상대가 지켜보는 만큼 수많은 동작 속에 숨겨져 있다. 그날 경기전 룰미팅에서 코나 귀 등 특정부위를 정해 알려주면 그 부위를 만진 후 다음동작이 진짜 사인이란 뜻이다.

반면 수비 때의 사인은 투-포수간에 주고받는다. 주로 포수가 사인을 내지만 주자가 2루에 있을땐 투수가 내기도 한다. 사인 훔치기는 통상적으로 2루 주자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고 지난달 31일 두산이 빈볼을 던지며 흥분한 것도 2루주자 박재홍이 사인을 훔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포수가 내는 사인은 공의 구질과 코스에 관한 것인데 이는 투수가 내더라도 포수가 확인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2루주자가 본다면 타자에게 얼마든지 전달이 가능하다.

국제시합에선 대놓고 팔을 뻗어 방향을 가리키지만 최근 경향은 오른발과 왼발을 떨면서 코스를 가리키거나 헬맷 좌우를 만지는 것이 추세. 현대의 박재홍이 취한 일련의 동작은 볼의 방향과 일치해 두산 선수단은 물론 코칭스텝에서도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양팀 주전선수 중 절반은 대표팀에 뽑혀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솥밥을 먹었고, 이전에도 올스타전과 수퍼게임 등을 거치며 한팀을 구성한 전례가 있다. 따라서 사인은 노출되기 마련이고 바뀌어봐야 거기서 거길 수밖에 없다.

또한 드림팀은 이번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상대팀의 사인을 훔치기도 했다. 이는 국제시합에서의 공공연히 묵인되고 있다. 다만 국내 경기는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이에 대한 금지가 불문율처럼 되어있다.

세밀한 분석야구를 펼치는 가까운 일본의 경우 백스크린 옆에 정보요원이 위치해 망원경으로 사인을 훔쳐 워키토키로 벤치에 알려주고 타자나 주자에 사인을 내어 톡톡히 재미를 보다가 이러한 행동이 적발되며 사회문제로 번진적이 있을 정도다.

이러쿵저러쿵 설왕설래가 오가는 현실이지만 루상에서 사인을 훔치는 행동은 정당치 못하며 야구인 스스로가 자제해야 함이 분명하다.

팬들이 기대하는 훔친 사인은 야구감각에 의해 상대의 수를 읽고 그에 대해 대처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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