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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여자란 왜’] 애 보기 진짜 싫지만 … 남의 아이도 껴안는 게 엄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아이를 갓 돌이 지난 15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해 3년을 꽉 채우고 이번에 유치원으로 옮겼다.

 아파트 이웃어르신들의 “아유 그 어린 것을 벌써…”라는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용케 버텼다 싶다. 방학에도 웬만하면 당직 선생님한테 아이를 맡겼던 이기적인 엄마였다.

 그렇게 단 하루라도 맡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육아부적응자인 내가 지난번 어린이집 파업 때는 어땠겠나. 공황상태에 빠져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네로 피신해 갔다. 남의 집 서재를 뻔뻔하게 차지하고 일하는 동안 친구 엄마가 대신 거실에서 아이들을 돌봤다. 대신 나는 먹거리를 제공했다.

 지난 3년간, 아무리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공동체가 무너졌다 해도 주변 엄마들은 이렇게 어찌어찌 씩씩하게 연대해 왔다. 어린이집에서 종일 답답하게 지내야 하는 직장맘의 아이를 자기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놀게 한 후 다시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전업맘, 전업맘이 쉬라고 주말엔 아이들을 같이 데리고 외출한 직장맘, 그리고 저녁에 급한 일이 생기거나 누가 아프면 서로의 아이를 흔쾌히 도맡았다. 엄마들이 각자가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을 공유하는 동안 놀랍게도 단 한 번도 누가 더 득을 보고 손해보나 예민하게 따지지도, 부담을 느끼지도 않았다.

 착해서일까? 아니다. 오히려 우린 육아를 아름답다 말하지 않는 ‘나쁜’ 엄마들이었다. ‘육아의 고귀함’보다는 ‘돌봄노동의 고됨’을 우선했다. 실제로 다들 가만 보면 진짜 애 보기 싫어하는 엄마들이었다. 한데 역으로 그 솔직함 때문에 조금 더 불편하고 손해보더라도 서로의 어려운 상황을 끌어안을 능력과 포용력이 생겼다. ‘나쁜’ 엄마들이 ‘좋은’ 일을 한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어떤 날 그녀들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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