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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정치 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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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덕일
역사평론가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는 말이 있다. 『효경(孝經)』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 나오는데,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라는 말이 뒤따른다. 즉 ‘몸과 터럭과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라는 뜻이다. 좋은 말이다. 이 말만 제대로 외워도 자살 따위의 극단적 자기파괴 행위는 사라질 것이다.

 문제는 “몸을 세워(立身) 도를 행해 후세에 이름을 날려(揚名) 부모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도의 끝”이라는 다음 구절이다. 여기에서 입신양명(立身揚名)이란 사자성어가 나왔다. 몸을 세워 도를 행해 이름을 날리는 입신양명이 과거급제로 출세한다는 뜻으로 변질되면서 고질적인 정치 올인(다 걸기) 사회가 시작되었다.

 조선 초기 문신 변계량(卞季良)은 ‘은혜에 감사하는 글(謝恩箋)’에 “소시(少時) 때 급제해 입신양명을 기약하려 했습니다”라고 썼다. 입신양명이 과거급제와 동일어가 된 것이다. 심지어 정약용 같은 인물도 유배 가기 전엔 제자들에게 준 ‘여러 학생에게 주는 말(爲茶山諸生贈言)’에서 “노나라 노인(魯之翁·공자)과 추나라 노인(鄒之翁·맹자)이 위란(危亂)의 세상을 만나서도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벼슬하기에 급급했던 것은 진실로 입신양명이 효도의 극치이고, 새나 짐승과는 함께 무리 지어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면서 과거 공부에 전념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 후 유배형에 처해져 자제들이 과거 응시 자체가 거부되는 폐족(廢族)이 된 후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과거 공부가 아닌 “독서,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제일가는 깨끗한 일(讀書是人間第一件淸事)”이라면서 과거 공부가 아닌 독서, 즉 학문을 강조했다. 정약용의 정신과 학문이 크게 성장하는 데는 유배라는 시련이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말해주는 사례다.

 조선 후기 노론 일당독재와 세도정치가 식민통치 시대와 군부독재 시대로 이어지면서 정치권력만 잡으면 모든 것을 다 가지는 후진적 정치행태가 굳어졌다. 그 결과 입신양명을 최고의 처세로 여기는 잘못된 관념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조금 성취한 인물들은 물론 권력을 감시해야 할 시민운동가들도 정치에 빨려드는 정치 비대(肥大)사회가 되었다.

 선거철에는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말이 출판계의 속설이 된 지 오래다. 모두 정치를 들여다보느라 책을 멀리한다는 것이다. 언제쯤 이런 후진적 관행을 깨고 다른 분야가 정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탈당, 잔류, 신당 등의 용어가 난무하는 것을 보니 이번 선거도 그렇게 되기는 그른 것 같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