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바다가 힘만으로 지켜질까…이어도 노래한 시인·문인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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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초(一超)라는 법명의 스님이었던 고은 시인은 1962년 10여 년의 절집 생활을 청산하고 환속했다. 갓 서른 나이. 이듬해 제주도로 건너가 3년간 체류했다. 제주도로 가는 선상에서 취기를 빌려 바다에 뛰어내리려 했지만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아 포기했다(고은과 함께 술 마시던 문인들은 죄다 먼저 저세상에 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량이 엄청나다). 허무주의에 빠져 있던 시절이었다. 제주에서도 자살할 마음을 품고 돌과 밧줄을 실은 조각배를 타고 술 취해 바다를 떠다니기도 했다. ‘…아무도 간 일이 없다 / 그러나 누군가가 갔다 / 가서 돌아오지 않을 뿐 / 저기 있다 / 저기 있다 / 아니다. 파도뿐이다. 숨막히는 파도뿐이다’라고 노래한 그의 시 ‘이어도’는 이런 체험 없이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은보다 여섯 살 연하인 작가 이청준(1939~2008)은 중편소설 ‘이어도’에 등장하는 제주 지역신문 편집국장 양주호의 입을 빌려 고은을 극찬한다. “이어도라는 시예요. 정말 굉장한 십니다. 어디에 있나, 어디에 있나, 나 이 작자한테 완전히 반했습니다. 고 아무개 이 작자 아마 이 섬에서 나간 친구가 틀림없어요. 이어도를 알고 있는 친구란 말입니다. 이어도를 모르는 자가 이렇게 가슴을 울릴 수가 없어요.” 소설 ‘이어도’는 또 술집 여인의 목소리를 통해 이어도 민요를 소개한다. ‘이어도하라 이어도하라 / 이어 이어 이어도하라 / 이어 하멘 나 눈물난다 / 이어 말은 말낭근 가라.’

 제주대 조성윤 교수(사회학)에 따르면 이어도를 소재로 한 소설 중 가장 먼저 나온 것은 김정한의 ‘월광한’(1940년)이다. 1944년에는 제주농업학교 교사 이시형이 일본어 소설 ‘イヨ島(이요도)’를 발표했고, 정한숙도 1960년 ‘IYEU도’를 내놓았다. ‘이어도 처녀’(이용상) 등 시 작품도 다수다. 그러나 이어도를 널리 알리고 이미지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역시 이청준의 ‘이어도’라고 한다. 중국은 고작 『산해경(山海經)』의 의미조차 분명하지도 않은 구절을 따와 이어도를 ‘쑤옌자오(蘇巖礁)’라고 우기고 있다. 콘텐트의 질과 양 측면에서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허남춘 교수(제주대·국문학)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신화·전설·민요에 더해 ‘이어도 연구회’ 같은 현대 학술단체의 연구 성과, 끊임없이 생산되는 예술작품들을 통해 이어도는 우리 의식 속에 튼튼하게 자리 잡았다”고 지적한다.

 우리 강역은 무기와 국제법만으로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제3국 사람들이 보기에 『산해경』의 빈약한 한 구절과 오랜 시간에 걸친 우리의 문화적 축적물 중 어느 쪽 손을 들어주고 싶을까. 이어도를 노래한 소설가·시인들이 새삼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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