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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칫돈'투자행렬…대덕밸리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달 28일 김대중 대통령은 대덕 연구단지에서 대덕밸리 선포식을 가졌다. 이후 대덕밸리는 한국 벤처 기업의 마지막 메카로 확실히 자리잡았으며, 벤처 캐피털들은 대덕행을 서두르고 있다.

“대덕밸리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한국벤처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메디슨의 이민화 회장은 이렇게 표현했다. 이회장은 이달 초 대전을 방문, 벤처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에서 벤처기업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대덕밸리 밖에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대덕밸리는 여의도의 10배에 해당하는 전체면적 2천7백52만㎡로 17개 정부출연 연구기관, 29개 민간 연구소 등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통상 옛 대덕연구단지를 핵심 축으로 충남 천안과 아산의 ‘반도체 밸리’와 충북 오창을 중심으로 한 ''중부벤처 하이웨이’를 포괄하기도 한다.

대전시와 충청남북도가 밝힌 이 지역의 벤처기업 수는 공인받은 업체의 경우 8백여 개. 하지만 인증을 준비 중인 벤처기업과 인큐베이팅이 진행 중인 기업을 모두 포함할 경우 1천여 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덕밸리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벤처기업간 최대 네트워크인 21세기 벤처패밀리(회장 이경수·지니텍대표)가 출범하면서부터. 기술과 우수한 인적자원을 포괄하고 있어 어느 곳보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중부권 기업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벤처밸리로 ''공인’하고 이를 기점으로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일단 벤처 캐피털에서 불을 당겼다. 지난 달 26일 대전 리베라 호텔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투자회사인 무한기술투자가 지역기업인들을 초청해 개최한 ''대덕밸리 벤처생태계 구축 심포지엄’에 3백여명의 관계자가 참석하는 등 벤처 열기가 후끈 달아 올랐다.

이날 참석자들은 개별기업의 성공이 아닌 벤처생태계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특히 한국과학기술원 배종태 교수는 실리콘 밸리 기업들의 급성장 뒤에는 개별기업의 역량은 물론 벤처생태계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벤처기업이 속성 상 가장 잘하는 분야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특화된 벤처기업은 다른 전문화된 분야의 벤처기업과 사업제휴, 인수합병 등의 ‘퓨전’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배교수는 “한국 벤처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자본시장이 활성화 되어야 하는데 대덕 밸리에 벤처 캐피털 뿐만 아니라 법률·마케팅·IR 전문가 등이 유입되는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며 “대덕이 이미 한국벤처의 중심권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벤처 캐피털에서부터 열기 점화

실제로 벤처 캐피털의 대전 유입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현재 대전에 사무실을 내고 투자할 기업을 찾아다니고 있는 벤처 캐피털만 6개. 벤처생태계 구축 심포지엄을 개최한 무한기술투자도 가장 활발하게 투자처를 찾고 있는 곳 중의 하나다.

지난 달 6일에는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문을 연 자본금 2백억원 규모인 신보창업투자도 기존에 대전 둔산동 산업은행 빌딩에 둥지를 튼 산은캐피털과 에이스월드, KTB 네트워크, ADL 파트너스 등과 벤처투자조합 결성을 앞다투고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전반적으로 얼어붙은 상황에서 대덕밸리로의 자금시장 이동 현상은 ‘대덕 발’ 벤처 열기를 짐작케 하고 있다. 이민화 회장은 “국내의 벤처 캐피털 가운데 우량한 10여 개가 연말을 전후로 대전지점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이들의 투자가 가시화할 경우 벤처 캐피털의 특성상 무더기 투자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벤처생태계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휴먼 네트워크’ 결성도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서로 잘난 맛에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던 대덕밸리 구성원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각종 행사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8일 벤처 카페 아고라에서 열린 ‘신입 대덕인 환영대회’가 대표적이다. 대덕넷이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대덕밸리의 새내기 벤처기업인 등 50여 명과 벤처 캐피털리스트·대전시와 유성구청 등 각계 인사 1백50여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대덕밸리 최초로 지난 20일 대덕바이오커뮤니티(대표 구본탁)에서 열린 ‘대덕인의 밤’ 역시 대덕밸리 휴먼네트워크 결성의 일환으로 ‘실리콘 밸리 파워’의 근본인 네트워크 결성이 대덕밸리에서도 생겨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1일 열린 대덕벤처협동화단지 입주 6개 기업간 ‘한마음 체육대회’는 ‘대덕밸리 공동체’ 구성 가능성을 확인해주는 자리였다.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화학연구소에서 치러진 ‘한마음 체육대회’ 참석자들은 함께 땀을 흘리면서 벤처 하면 떠오르는 ‘삭막함’을 떨쳐버렸다.

벤처인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대전시도 적극 나서고 있다. 홍선기 대전시장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연말까지 창투사와 기술금융회사, 은행 등과 함께 대덕밸리 내 벤처기업에 투자할 제2호 대덕벤처투자조합을 결성할 것”이라며 “또 벤처기업의 경영 능력을 높이기 위해 2002년 개원을 목표로 테크노경영대학원을 설립하겠다”고 약속했다.

벤처문화가 움트면서 대덕밸리 벤처기업들의 매출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이같은 추세라면 1천억원대의 매출도 기대할 수 있다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포네이도’라는 인터넷 폰을 개발해 미국에 수출키로 한 기가시스네트의 경우 연말까지 2백억원 상당의 수출 계약이 성사 단계에 있으며 대덕밸리 두 번째 코스닥 등록기업인 하이퍼정보통신의 경우 지난 해 매출 2백50억원의 두 배 매출을 자신하고 있다.

이밖에 블루코드테크놀로지, 액팀스, 지씨텍, 오프너스, SMIT, 뉴그리드테크놀로지, 한백, 빛과전자, 해동정보통신, 다림비젼, 동양엔터프라이즈, 새길정보통신 등 20여 개 업체가 1백억원 이상의 매출을 이미 넘겼거나 예상하고 있다. 때문에 본격적인 매출이 시작되는 내년에는 대덕밸리 벤처기업들의 코스닥 행이 러시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성급하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과제도 많다. 최대 화두는 생산시설이 들어설 ‘땅’ 문제. 기업이 성장하는데다 창업되는 기업마저 늘어나면서 땅에 대한 기하급수적인 수요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절박성 때문에 대덕밸리 선포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토지용도 변경’ 의 뜻을 밝혔다. 그러자 대덕밸리 벤처기업인들은 건폐율 상향 조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재 정부출연연구소들의 건폐율을 보면 이해가 간다. 표준과학연구소 4.54%, 원자력연구소 4.74%, 화학연구소 6.86%, 기계연구소 5%, 에너지연구소 15.01%, 전자통신연구원 6.12%, 한국과학재단 4.71%, 천문연구소 4.17%, 항공우주연구소 10.67%, 자원연구소 4.17%, 생명공학연구소 8.22% 등이다.

상한선인 20%를 넘기는 곳은 한 곳도 없다. 10%조차 넘기지 못하는 곳도 수두룩하다. 때문에 벤처기업인들은 법적으로 가능한 한도의 땅이라도 풀어달라는 주장. 반면 과기부와 출연연 측은 ‘어림없다’는 반응이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벤처기업들의 토지 부족은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면서 “하지만 본래 대덕에 연구단지를 조성한 기본적인 목적은 생산시설을 갖추자는 것이 아니라 좋은 환경에서 연구에 매진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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