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머우 감독 '집으로 가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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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머우(張藝謀)감독이 '특별히' 장쯔이(章子怡)를 위해 만든 영화다.스크린 가득 장쯔이를 비추는 장면이 유난하다. 산과 들을 뛰어다니는 발걸음까지 놓치지 않는다. 또 연기자 중 장쯔이를 제외하면 남자 주연조차 돋보이지 않도록 감독은 장쯔이를 배려했다.

거장의 탁월한 연출력이 중국 산천의 사계절을 은근히 포옹하는 '집으로 가는 길'은 장쯔이의 순박한 매력이 더해지면서 잔잔한 감동까지 주는 아름다운 영화가 된다.

'붉은 수수밭' '홍등' '책상 서랍속의 동화' 등으로 너무나 중국적이어서 오히려 세계적인 감독으로 평가받는 장이머우는 중국 신진 감독들로부터는 영화를 서구인의 입맛에 맞추고 사회성은 빼놓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수줍은 첫사랑의 기억을 살포시 화면에 풀어내는 그의 솜씨는 항간의 쓴소리를 무색케 한다.

영화의 초반 장면은 까칠하다. 도시에 살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달려온 아들이 동네 어른들과 장례식 절차를 의논하는 장면을 흑백화면으로 처리했다.

전통 장례를 고집하는 어머니를 어떻게든 설득하려 하지만 요지부동이다. 아들은 어머니가 왜 무리한 일을 그토록 고집할까 생각하다 부모의 연애이야기를 떠올린다.

여기서 화면은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하며 장쯔이가 순박한 시골 처녀 디로 화사하게 등장한다.

마을 처녀 중 가장 예뻤던 디는 선생으로 온 도시 청년 창위(쩡하오)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디는 집 근처에 우물이 있는데도 일부러 학교 근처로 가 그와 마주칠 기회를 만들고, 창위 역시 호감을 표하며 사랑을 키워간다.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도시로 붙들려간 창위는 디를 잊지 못해 몰래 빠져나오다 잡혀 2년형을 받는다.

이런 이야기를 축으로 영화는 디의 사랑과 기다림, 열정을 차분하게 그린다.

창위가 차를 타고 도시로 떠나던 날 손수 만든 음식을 전하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산자락을 오르다 지쳐 넘어진 디가 조각난 그릇과 흩어진 음식을 애틋하게 쳐다보는 표정, 그에게 선물로 받은 빨간 머리핀을 잃어버리고선 몇날 며칠을 하염없이 산길을 헤매는 애처로운 모습에서 장쯔이의 진가가 확인된다.

특히 장쯔이의 일거수 일투족과 희비는 남성 관객의 감탄과 함성까지 이끌어낸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창위가 떠난 길, 그를 훔쳐봤던 길, 그리고 그를 기다렸던 길 등을 계절 변화에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담아 영상미가 돋보인다.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으로 국내에도 선보인 장쯔이는 중국 드라마 아카데미 재학 중 열아홉의 나이에 張감독에게 발탁돼 데뷔작 '집으로 가는 길'을 찍었다.

장쯔이는 현재 중국에서 촬영중인 김성수 감독의 '무사'에 출연하고 있다. 11월 4일 개봉.

Note

시골 처녀가 교사를 사랑한다는 설정이 비슷해 '내 마음의 풍금' 중국판이라고도 한다. 장이머우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지만 그래도 영화가 끝나면 관객들은 장쯔이 얘기만 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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