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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 술·여자문제 소란 두려웠지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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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대한민국 사회가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일이지만 당시 총리를 지냈던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를 비롯해 야권 인사들은 이제는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해군을 해적으로 폄하하는 발언까지 나와 군이 강력히 반발하는 등 전례 없는 상황이 펼쳐지는 중이다. 중앙SUNDAY는 해군 1함대가 있는 강원도 동해시를 현지 취재했다. 함대 사령부가 도심 한복판에 있고, 항구에는 군함과 민간 배가 뒤섞여 있는 곳이다. 1만5000명이나 되는 군인과 그 가족들이 동해시에서 살고 있다. 그곳은 어떤가. 혹시 제주 강정마을 일부 주민의 우려처럼 군인과 민간인들의 충돌과 마찰이 있지는 않은가. 그런 궁금증에서다. 하지만 동해시의 상황은 전혀 딴판이었다.

바닷바람이 쌀쌀한 봄비를 흩뿌리는 10일 오후. 강원도 동해시 중심 천곡동의 한 대형 횟집에서 주인 김시홍(41)씨를 만났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사가 알려진 뒤 1함대에 비상이 걸리는 바람에 해군 회식 예약이 잇따라 취소되고 그런 상황이 한 달간 계속되는 통에 연말연시 장사를 온통 망쳤다”고 울상을 지었다. “우리 식당에서 1함대 소속 해군이 올리는 매상이 20~30%나 된다”며 “그래서 1함대가 없다면 동해시 전체 식당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과장이 아닐까? 발한동 동해중앙 시장으로 가 봤다. 시내 유일의 전통시장인 이곳은 주말을 맞아 바빴다.

시장 상인회에서 만난 한동식(55) 상인회장은 “1함대 사령부와 군인들이 없다면 여기는 물론 동해시 전체 경제가 허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시장이 어느 곳이나 어렵지만 중앙시장이 그나마 버티는 건 군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한 회장은 “전통시장에서 발행한 온누리상품권도 군에서 적극적으로 구매해 줘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동해시 인구는 9만5000명 정도인데 1함대 소속 군과 군무원, 가족은 1
만5000명쯤 된다. 동해시 인구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최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야당에서 ‘해적기지’라는 표현이 나온 데 대해 동해시 주민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시장 상인들은 “그럼, 우리는 해적들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살고 있다는 거냐”고 말했다. 동해시는 국내의 대표적인 민군 공용 항만이다. 제주 강정항에 지으려는 해군기지의 모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강원도 최대의 무역항인 이 항구에서 6000여 척의 민간 배가 시멘트·석회석 등 연간 3500만t 내외의 화물을 싣고 내린다.

그 바로 곁에 동해와 독도를 수비하는 해군 제1함대 군항이 있다. 산업·관광·군사 기능이 결합된 동해시는 민과 군이 어떻게 공존과 상생을 해 나가는지를 보여 주는 훌륭한 모델이다. 무엇보다 1함대는 동해시의 경제에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제1함대 사령부와 동해시의 자료에 따르면 해군은 동해시 지역 내 총생산(약 2조원)의 8.1%에 해당하는 1658억여원의 경제적 기여를 하고 있다. 부대원의 직접 소비와 사업비 지출, 지방세 등 직접적인 기여 외에 생산유발 효과 등을 더한 수치다. 동해시 한 해 예산(2745억원)의 60%가 넘는다.

동해시로 찾아오는 장병 면회객은 한 해에 수천 명이 넘는다. 망상해수욕장 안에 있는 군 하계 휴양소로도 한 해 4000명이 온다. 군이 개방한 체력단련장(골프장)으로는 지난해 약 2만7000명이 찾아왔다. 거기에 훈련차 동해로 왔다가 휴식을 취하려고 항구에 정박하는 외국 함정의 병력들도 한 해에 1500명쯤이다. 생산유발 효과가 608억원이고 부가가치 효과는 339억원이나 된다는 분석까지있다.

대민봉사의 경우 미미하지만 내과·치과·보건소의 의료봉사, 헌혈 봉사 같은 것을 따지면 숨어 있는 혜택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동해시 송정동에서 자동차대리점을 운영하는 이정학(49)씨는 “해군 없이는 동해시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식당·시장·숙박업을 막론하고 동해시에서 군의 경제적 가치는 상당하다”며 “시민들이군과의 관계를 더 긴밀히 하려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 했다.

동해항에 기항한 미 제7함대 블루리지함 장병들은 지난 4일 1함대 부산함 장병들과 함께 부곡동 시립노양원을 찾아 발 마사지 봉사활동을 했다. [해군 1함대 제공]

최근 동해시에서는 ‘일사모’라는 모임이 생겼다. 1함대를 사랑하는 모임이다. 대리점 사장 이정학씨가 회장이고 회원은 아직 17명뿐이다. 이씨는 “해군이 동해시를 위해 애써 줘 고맙다는 보은 차원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해군이 동해시의 번영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존재라는 것을 절감하기때문에 교류를 늘리기 위해 만든 모임”이라고 설명했다. 동해시는 강원도 영동지방의 도시들이 원래 그렇듯 큰 눈, 태풍, 산불 등 대규모 자연 재해를 끊이지 않고 겪는다.

김학기 동해시장은 “그럴 때마다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을 위해 앞장서는 게 제1함대와 장병들이다. 제설장비를 가져와 길을 뚫고, 고립된 시민들을 구조하는 등 정말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고 전했다. 86년 함대 사령부가 들어선 이후 축적된 이런 대민활동은 군과 민을 연결하는 끈이 됐다. 동해시 통장협의회 이종운 회장은 “현재 동해시에는 238명의 통장이 있는데 그중 현직 군 부사관의 부인 10
명과 퇴직 해군 15명이 통장”이라며 “이미 군은 민간인과 구분이 불가능할 만큼 동해시의 일부분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여곡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정학 회장은 “1979년께 현재의 자리로 무역항이 들어오고 곧이어 군항이 들어설 때 갈등과 불만이 왜 없었겠느냐”며 “그동안 잘살던 우리도 집에서 쫓겨났다”고 말했다. 군항이 자리 잡은 뒤에는 ‘군의 불량성’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동해시 부곡동에서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이희철씨는 “군부대가 처음 들어올 때는 젊은 군인들이 많으면 술 마시고 여자 문제로 소란을 일으킬 것이란 두려움이 시민들 사이에 컸다”며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니 군인들이 정말 괜찮더라”고 말했다. 제1함대 정훈공보실장인 김진영 소령은 “사병들은 외출할 때 반드시 정복을 입어야한다”며 “군인과 민간인이 관계된 폭력 등 범죄 사례는 최근 보고된 게 없다”고 말했다.

해마다 몇 차례씩 공동 훈련을 할 때마다 입항하는 미군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 7함대가 입항했을 때의 일이다. 미군들이 호프집에 쏟아져 들어왔는데 헌병들이 20분마다 한 번씩 돌아다니며 점검을 해서 아무런 사고도없었다는 게 주민들의 이구동성이다. 미군 함정당 1000명 정도가 근무하는데 그런 배가 몇 척씩 동해시에 머물며 쓰는 돈은 중소상인들에게는 단비다. 물론 동해시는 북한과 가까운 지역이라는 특징 때문에 주민들이 안보의식도 높고 군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1968년 울진·삼척의 무장공비 침투사건, 98년 강릉 잠수정 사건 등 인근 지역에서 큰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주민들은 해안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수상하면 군에 즉각 신고한다.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 반대쪽에선 환경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이에 대해 ‘1함대를 사랑하는 모임’의 이 회장은 “군시설에서는 폐유나 쓰레기, 화학약품 등 어떤 문제도 제기된 적이 없었다”며 “오히려 석회석 등 먼지 발생이 많은 화물 중심인 산업항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간혹있다”고 말했다.

군항과 산업항, 여객터미널이 한곳에 자리잡은 동해항의 북쪽 지역에는 제1함대가 운영하는 체력단련장(골프장)이 있다. 9홀 규모인데 동해시민들에겐 평일에는 절반 값에 공개하고 있다. 1함대가 하는 자원봉사활동은 화려하다. 함대는 시내 15개 관공서, 37개 학교, 12개 사회복지시설 등과 결연 관계를 맺고 있다. 독거노인 세대를 방문해 도움을 주거나 해양환경 정화, 불우이웃 돕기 바자 등도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마라톤 등 체육행사도 연중 열린다. 제1함대 김진형 사령관(소장)은 “훈련과 작전 등 본연의 임무 외에 어떻게 하면 지역주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을지 항상 생각한다”며 “해군 장병들을 동생과 자식처럼 여겨 주는 동해시민들을 돕는 게 우리의 기쁨”이라고 말했다

동해시 =안성규·이승녕 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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