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뀐다, 두고 보자”는 야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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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지도부의 정국관이 7일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명숙 대표는 “(이명박 정부를)심판해야 하는 때가 눈앞에 다가왔다. 4·11 총선이 지나면 우리는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더 직설적으로 말했다. 정인양(해군 준장) 제주기지사업단장에게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된다. 연말엔 정권도 바뀐다. 당신이 지휘관이라면 결단을 내려라. (우리가 정권을 잡은 뒤)책임을 물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 고문 측은 8일 “정권이 바뀐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긴박한 현장에서 압박을 느끼라는 취지에서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민주당 내에 한 대표나 정 고문과 같은 시각이 팽배해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민석 전 민주당 최고위원도 8일 라디오에 출연해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이 이길 가능성이 99%”라고 말했다. 정권교체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 이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이어 야권이 쟁점화한 이슈다. 두 이슈를 대선 때까지 끌고 가겠다는 야권의 의지는 분명하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의 한 의원은 “선거에 유리하다고 보는 측면도 있고, 끌려가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제주 해군기지는 안보보다는 환경·생태·평화의 이슈로 몰고 가기 좋은 재료다. 민주당의 주된 지지층이자 공략 대상이기도 한 온라인 세대들이 좋아하는 이슈다. 좌파 성향의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찬성이냐, 반대냐의 리트머스 시험지를 들이대며 명확한 입장을 요구한다. 이미 통합진보당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정희 공동대표는 7일 해군기지건설단을 항의 방문해 “내년 예산에 반영될 줄 아느냐. 두고 보자”고 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지난 4일엔 이 당의 김지윤(28·여) 비례대표 후보는 트위터에 제주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라고 표현했다. 군(軍)을 도둑이란 뜻의 ‘적(賊)’으로 폄하한 것이다.

 이처럼 좌측에서 작용하는 인력(引力)에 민주당은 중심을 잃고 있는 모습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제주기지와 한·미 FTA는 전체 국민과는 별개로 야권 연대와 관계 있는 게 사실”이라며 “국회의원 당선에 필요한 마지막 1000표를 위해선 목소리 큰 진보진영의 주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 속에 일부 목소리에 끌려가는 ‘편승의 정치’와 싫어도 어쩔 수 없는 ‘침묵의 정치’가 민주당의 한복판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당 안팎에선 이를 두고 ‘수권정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최근 이슈화한 탈북자 인권 문제에 계속 침묵하는 게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이 같은 민주당의 태도는 “인권은 이념을 뛰어넘는 보편적 가치”(4일)라고 말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입장과도 적잖은 간극을 노출하고 있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정장선 의원은 8일 “탈북자 문제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군기지와 한·미 FTA 모두 이명박 정부가 아닌 노무현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추진됐다는 점은 민주당에 큰 아이러니다. 말 바꾸기로 역공을 당할 수 있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하지만 민주당은 상황논리를 바탕으로 인기 잃은 이명박 정부와의 대립각 세우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안보와 경제 이슈가 정치 이슈로 변질된 것이다.

 새누리당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8일 “노무현 정부 때 ‘제주 해군기지가 대양해군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했던 게 한명숙·이해찬 당시 총리”라며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제주도에 가서 선동하고 쟁점화하는 건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 구럼비 폭파 기도는 제주도민에 대한 전면적 선전포고”라며 “이명박 정부의 무모한 도발을 규탄한다”고 공격했다.

김정욱·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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