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인물실록 봉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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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연극 ‘인물실록 봉달수’는 꽉 막힌 60대 회장님과 까칠한 40대 여성 작가의 충돌과 소통이다. 회장역은 송영창(오른쪽)이, 작가역은 김로사가 연기한다.

“작품료 전체를 오늘까지 넣어주셔야 해요. 내용에 관해선 일체 간섭을 해선 안 되고요.”

 돈 많은 회장님이 있다. 나이가 들고, 병도 걸리니 삶이 허망해졌다.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남기고 싶어 자서전을 내기로 한다. 기왕 책 내는 거, 폼 좀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무명의 대필 작가가 아닌 잘 나가는 소설가를 섭외한다. 근데 이 여성 작가, 깐깐함이 하늘을 찌른다. 선불은 기본, 내용에도 관여하지 말란다. 내 돈 내고 자서전 내겠다는 데 그게 말이 되냐고?

 연극 ‘인물실록 봉달수’는 동명의 자서전을 두고 벌이는 두 인간의 팽팽한 심리전이다. 보청기를 개발해 탄탄한 중견 기업을 일군 봉달수(윤주상·송영창 더블 캐스팅)는 이 시대 전형적인 아버지다. 반면 자의식 강한 소설가 신소정(함수정·김로사)은 비록 급전을 마련할 요량으로 집필에 응했지만 “자서전에도 영혼을 담겠다”며 의욕을 불태운다. 기 센 두 인간이 만났으니 어찌 티격태격 하지 않겠는가.

 발상도 흥미롭고 진행도 속도감이 있다. 백미는 ‘100분 토론의 무대화’라고 할 만큼, 두 남녀가 벌이는 말싸움이다. 딱딱 치고 받는 타이밍이 절묘하다. 논리도 그럴싸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때론 별 것 아닌 것에 자존심을 거는 모양새는 가끔 우습다. 하지만 저변엔 남녀의 성(性)의식, 세대간 충돌, 성장과 분배의 이념 등 한국 사회 전반을 둘러싼 대립 구도가 압축돼 정교하게 배치돼 있다.

 다만 “열망과 허망이 교차하고 희망과 원망이 엇갈리고”와 같이 툭툭 등장하는 관념적 대사는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든다. 막판 반전은 무릎을 치기보단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연극 ‘인물실록 봉달수’=18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1만5000원∼5만원. 02-929-8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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