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이야기] 국산차 '수출 1호'는 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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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말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참석차 방한했던 동남아시아의 작은 석유 부국인 브루나이의 국왕 볼키아는 1996년까지 세계 제일의 갑부(4백억달러)였다.

현재도 개인 재산으로 1백60억달러를 갖고 있는 그는 씀씀이가 크기로 유명하다.

자동차 수집이 취미인 그는 2천대의 각종 고급 승용차와 17대의 비행기, 여러척의 선박과 대소형 요트를 갖고 있으며 7백88개의 방이 있는 큰 궁전에서 살고 있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박물관인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하라박물관도 1천5백대밖에 없는데 이 박물관을 능가하는 그의 주차장에는 유명한 클래식 카부터 각국의 고급 리무진까지 즐비하다. 소장하고 있는 차를 하루에 한대씩 탄다고 해도 전부 타려면 5년 반이 걸린다.

브루나이와 한국은 자동차와 관련된 인연이 있다. 브루나이와 처음 교역한 67년 가을에 국산 리어엔진 버스 한대를 당시 버스 메이커였던 하동환자동차에서 만들어 브루나이로 수출했다. 이것이 국산차 최초의 수출이었다.

엔진과 변속기 등 구동부품은 일본 닛산에서 들여오고 차체와 내부시설은 국산 디자인으로 만든 이 버스를 수출할 때 당시 교통부장관, 교통부차관, 서울시장 등이 나와 수출 축하 테이프를 끊기도 했다.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이라 배에 싣기 위해 경부 국도를 타고 제 발로 부산항까지 가는 동안 도시를 지날 때마다 생전 처음 보는 늘씬하고 멋진 버스를 보고 구경꾼이 몰려들어 우리가 만들어 처음 먼 나라로 수출한다는 말에 손뻑을 치며 만세를 불렀다.

33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의 이 첫 수출 버스가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특히 필자가 그 버스를 못 잊는 것은 그 버스의 디자인을 맡았기 때문이다.

전영선 <자동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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