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모 감독의 신작〈집으로 가는 길〉

중앙일보

입력

▶감상포인트:
아름다운 음악과 수려한 화면 속에 담긴 소박하지만 순수한 첫사랑의 느낌. 초록 무성한 들판과 구비진 시골길을 온종일 뛰어다니는 장쯔이의 풋풋함.'와호장룡'으로 알려진 장쯔이의 첫 데뷔작이기도 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붉은 수수밭〉〈홍등〉등을 통해 중국적 정서와 색채를 표현해 온 장이모 감독의 새 영화로 올해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장이모도 나이를 먹어가는 걸까. 작년 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을 수상했던 〈책상서랍속의 동화〉를 비롯한 그의 최근작들을 볼 때, 과거 작품들에서 보여지던 치열한 사회적 문제제기나 기교가 배제되고 아름다웠던 과거의 전통과 순수한 사랑, 인간적 가치에 대한 그의 깊이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도시에서 사업을 하는 루오 유셍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번거로운 전통장례를 고집하는 어머니를 보며 어린시절, 얘기로 들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순수했던 사랑을 회상한다.

40년전 유셍의 어머니 쟈오 디(장쯔이)는 시골마을로 부임 온 젊은 선생, 창유(쩡 하오)에게 첫 눈에 반한다. 창유를 만나기 위해 쟈오디는 그가 자주 다니는 길목을 서성이며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시도하고, 둘은 미처 사랑을 확인하기도 전에 이별을 맞이한다. '정월이 되면 돌아온다'는 말과 함께 창유는 도시로 떠나고 쟈오 디에게는 그가 준 머리핀과 음식을 담아주던 깨진 그릇만이 남는다. 그가 돌아오기로 한날, 쟈오디는 눈보라를 맞으며 마을 어귀에 나가 하루종일 그를 기다린다.

시골마을의 구비구비 이어진 길과 그 주변의 풍경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그들의 사랑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첫 사랑의 마음 그대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어주기만 해도 기쁘다. 그가 준 머리핀을 잃어버리자 몇 날 며칠 그 핀을 찾아 헤매고, 눈보라 몰아치는 벌판에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면서도 추운줄 모른다. 아버지가 죽은 이후 현재의 흑백화면과 사랑의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과거의 선명한 원색화면의 대비는 인간 본연의 감정인 사랑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초록 무성한 들판과 눈발 휘날리는 언덕을 가로지르는 좁다란 시골길에서 그들은 만났고, 기다렸고, 이별과 재회도 겪는다. 영화의 마지막, 이 모든 추억을 담고 있는 '길' 위로 아버지의 장례 행렬이 이어지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 '길'이 가지는 의미를 보여준다. 참고로 중국에서 전통장례에서 길은 '죽은 자가 집으로 오는 길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의미.

자신의 영화를 중국 정부와 타협했다고 비난하는 6세대 감독들의 비판에 대해 "중국현실에 바탕을 둔 단순하고 직접적인 영화를 통해 대중과의 교감을 시도"한다는 장이모 감독의 말처럼〈집으로 가는 길〉은 40년동안 소박하지만 한결같은 사랑의 모습을 통해 모든 것이 너무도 빨리 변해가는 현재 중국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그를 통해 잃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가치들을 일러주는 작품이다. 11월 4일 개봉.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