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은은한 향기를 내는 조웅천의 진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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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신설 된 타이틀이 타자와 투수 부분에 하나 씩 있다. 타자는 득점, 투수는 홀드 부분이다.

득점 부분에서는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이 107점으로 이변이 없는 한 2위인 98개인 LG 트윈스의 이병규와 현대 유니콘스의 박재홍에게 추격을 허용하지 않을 것 같고 홀드 부분은 유니콘스의 16개의 조웅천이 2위인 11개를 기록 중인 트윈스의 차명석, 두산 베어스의 이혜천과 구자운을 제치고 수상자로 확정이 되었다.

초대 ‘홀드 왕’ 조웅천은 무려 73경기에 구원 투수로 출장하여 8승 6패 7세이브를 기록, 현대 유니콘스가 올 시즌 전체 1위를 달리는 데 큰 수훈을 세웠음은 물론이고, 김수경-임선동-정민태가 각 각 18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하여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동안 한 팀에서 3명의 다승왕을 배출하는 신기록을 세우는 데 일조를 했다.

조웅천이 벤치 뿐만 아니라 투수들에게 얼마나 신뢰를 받는 지는 출장수와 성적에서도 드러나지만 팀이 위기에 처할 때 김재박 감독이 제일 먼저 바라 보는 선수이기도 하다. 그 만큼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다.

지난 9일 잠실에서 벌어졌던 베어스와의 경기를 보면 조웅천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전날 까지 17승으로 다승 3위였던 정민태는 7회말 까지 무려 6실점을 하여 3대 6으로 패전 일보 직전 까지 갔다. 그러나 유니콘스는 8회 초 기적에 가깝게 4점을 뽑아 7대 6으로 역전 시켰다.

이 때 벤치에서는 구위가 떨어진 정민태를 강판 시키고 조웅천을 올렸다. 사실 조웅천은 주말 트윈스와의 수원 경기에서 2경기 연속 박빙의 승부가 펼쳐져 개인적으로는 2연속 세이브를 올렸지만 심신이 피로한 상태였다. 그러나 팀 동료인 정민태의 다승왕을 도와 주기 위해 기꺼이 등판했다.

8회말 첫 상대 타자인 안경현에게 3루수를 살짝 넘기는 2루타를 내주고 후속 타자인 홍원기에게 우전 안타를 허용하여 무사 1,3 루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누가 봐도 최소 1점을 허용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조웅천은 후속 타자인 정수근을 투수 땅볼로 유도하여 3루 주자 안경현을 잡아 내고 다음 타자인 장원진과 강혁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움으로 해서 정민태의 승리를 지켜 주었다.

9회말 조웅천이 마지막 타자 전상렬을 중견 플라이 아웃 시키고 세이브를 올리자 가장 기뻐했던 사람은 정민태임은 물론이다.

사실 조웅천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난 1990년 전남 순천상고를 졸업하고 태평양 돌핀즈(현대 유니콘스의 전신)에 입단했으나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금도 182cm 에 70 kg 밖에 나가지 않은 약해보이는 체격인데 당시로서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돌핀즈 시절는 총 54경기에 나와 2승 7패 방어율 3.82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현대 유니콘스로 팀이 바뀐 1996년부터 올 시즌까지 5년 연속 50경기 이상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등 10월 9일 현재 229 경기에 출장하여 25승 15패 16 세이브 (홀더 제외) 방어율 2.88 의 아주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조웅천은 사이드 암으로서 싱커 및 커브 등 변화구 각이 날카로며 또한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의 무브먼트는 국내에서는 수준급이다. 또한 제구력 또한 정교하기 이를 때 없다.

한편 보통 선수라면 한 번쯤 선발 투수 혹은 확실한 마무리로 자리 매김을 하고 싶을 듯 한데 조웅천은 승부처라고 생각되면 승패에 관계없이 전천후로 등판한다. 이런 이유로 경기 출장 수에 비해 승리와 세이브 등이 적다. 당연히 스포트라이트를 적게 받을 수 밖에.

그러나 조웅천은 주어진 역할에 감사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활약을 펼치는 것도 좋지만 묵묵히 뒤에서 자기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나가는 것도 팀에게는 엄청 난 도움이 된다라는 신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조웅천은 현재 목표는 단 한 가지다. 그것은 바로 팀이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 할 때 자기 몫을 톡톡히 해 내는 것이다. 멀리는 최다 경기 출장 투수로 이름을 남기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드러내지는 않는다.

오래 가지 않는 찰라의 강렬함이 아닌 오랫동안 남아 있는 은은한 향기 같은 조웅천은 두 말 할 것 없이 유니콘스의 보배이자 기둥이다.

※ 신종학 - 프로야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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