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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모성정치 실험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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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대한민국 64년 정치사에서 초유의 현상이 진행 중이다. 여야 영수가 모두 여성인 모성정치 시대. 1960년대 박순천, 70년대 김옥선이라는 걸출한 여성 정치인이 있었지만 3김에 밀려 영수까지는 엄두도 못 냈던 시절을 지냈다. 대한민국 60년은 마초 남성 지배 시대였다. 그러던 것이 한 갑자를 지나서야 바야흐로 여성정치 시대를 맞이했다. 사실, 남성은 진화론적으로 열등 동물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투쟁은 나의 것! 이게 남성의 전형적인 표어임을 나이가 들수록 알겠다. 게다가 애정 결핍증이라니! 희수가 지나서도 어머니 무덤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남자 노인들은 대개 사냥 경쟁에 지친 육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주는 푸근한 망명의 품이 그리운 거다.

 남성의 눈물이 생물학적이라면, 여성의 눈물은 인류학적이다. 어머니의 억눌린 인생이 자신과 겹쳐 오는 탓이고, 아버지의 근거 없는 오기가 연민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저돌적이던 아버지, 자신의 속 빈 방황을 가족 생존과 맞바꾼 탓이라고 속절없이 무너지는 한 남자의 진화론적 운명을 이해하느라 흘리는 눈물이 아니겠는가. 격돌에 지친 군상들을 무한히 끌어안는 포용의 손길이 필요했던 게 저간의 한국정치였다. 두 여인이 나섰다. 이른바 모성정치의 시간이 열렸다. 아니 실험이 시작됐다.

 야당 영수 한명숙, 중산층 가정에서 정의가를 부르며 자란 듯한 맏딸이 맹견 길들이기에 나섰다.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듯 기세등등한 집안을 다스리느라 자신도 모르게 공격성을 드러내곤 하지만, 그래도 복수의 칼을 가는 투사들을 수습하는 데에 이만한 인물이 없다. 언제나 반듯한, 그러나 조실부모해서 매사 신중한 여당 영수 박근혜, 밖에서 몰매 맞고 돌아온 자식들을 거두느라 타고난 모성을 있는 대로 짜내고 있다. 한국정치는 바야흐로 모성 수유 시대다. 중진이든 초짜든 각성의 모유를 수유해 권력을 악마적 수단으로 변질시키는 남성의 열성 유전자를 걸러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정치는 지배 욕망이 남다른 자들의 놀이터가 아니다.

 몇몇 선진국에선 본격적인 여성정치가 개막된 지 오래다. 이미 80년대에 엄하고 단호한 대처 총리가 남성 격투기로 아수라장이 된 영국을 반듯하게 살려놨다. 이후 노동당의 블레어와 브라운 총리, 보수당의 캐머런 총리는 당적을 가릴 것 없이 이 나라의 시어머니가 남긴 보육의 정치를 계승했다. 욕심쟁이 슈뢰더가 하야한 독일엔 현모형 리더 메르켈 총리가 등장해 독일의 너그러운 위상을 회복했다. 못난 이웃을 거두는 모성성이 아니었다면 그리스는 이미 파산했을 것이고, 유럽은 남북으로 두 동강 났을 것이다. 덴마크에도 멋쟁이 여성 헬레 토르닝슈미트 총리가 등극해 중도파와 좌파 연정을 출범시켰다. 핀란드는 총리와 대통령이 모두 여성이고,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도 여성 리더십이 돋보이는 나라다. 부자 나라의 여성 리더들은 택시도 타고 손수 장을 볼 만큼 스스럼이 없다. 남성은 권력을 행사하고, 여성은 권력을 관리한다.

 세상의 어머니를 토지라고 한다면, ‘토지’의 작가 박경리도 어머니가 그리웠다. 죽음을 예감한 시각, 버릴 것을 다 버리고 난 후에 남는 것은 어머니였다. 곧 이뤄질 어머니와의 만남을 예비해 몇 편의 시를 썼다. “나는 어머니가 목청을 돋우어/ 남과 다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삐거덕거리기 마련인/ 기봉이네하고도 다투는 것을 못보았다/ 사람들이 남의 험담을 하면/ 세상에 숭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했고/ 말소드레기 일으키는 것들/ 상종 안한다는 말도 했다”(시, ‘어머니의 사는 법’에서). ‘말소드레기’, 말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인데 분란의 끝은 격돌이었으니 이거야말로 남성정치의 자랑, 한국정치의 못난 기질 아니겠는가.

 총선, 대선 정국의 진입로를 닦는 모성정치의 당면과제는 명백하다. 정치는 유혈경쟁, 권력을 잡으면 재물을 탐내고, 이념이 다르면 폭력을 불사하는 남성적 야만성의 뇌관을 제거하는 것이다. 학교폭력만이 문제는 아니다. 2012년, 더 드세질 이념투쟁과 멱살잡이에 국민들은 지레 질겁한다. 한없이 추락하는 보수정권을 면죄할 마음도 없고, 진군가를 부르며 돌진하는 진보세력도 미덥지 않은 이 어정쩡한 환절기에 모성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한 가닥 희망인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마초정치가 육박전을 벌인 끝에 무엇이 나아졌는가? 부국안민? 화해와 타협? 도덕과 공익? 글쎄다. 서민정치의 깃발은 십수 년째 걸렸는데 서민들은 대체로 버려진 자식 같고, 화합과 통합을 십수 년 들어왔건만 정치인들은 폭력 가정의 가장 같았다. 국민들도 벌써 두 종족으로 갈라섰는지 모른다. 보수와 진보, 빈자와 부자. 총선과 대선은 두 종족 간 육박전이 될까? 선거 승리만 급한 게 아니다. 마초정치를 아예 퇴장시키는 것, 어렵게 등장한 모성정치가 그 작은 단서라도 마련해줄 수 있을까.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