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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안양 예비후보 돈봉투 ? 4·11 총선의 경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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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국 선거에서 돈을 뿌리고 받는 행위는 단순히 감옥에 가거나 사퇴하는 걸로만 끝나지는 않았다. 피를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경북 청도에서는 선거부정 수사 과정에서 주민 2명이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소싸움으로 유명한 평화로운 농촌마을이 한때 돈봉투 때문에 흉흉한 곳이 되었던 것이다.

 돈 선거라는 유령을 쫓으려는 노력은 전방위로 진행되어왔다. 당국은 1994년 통합선거법을 만들면서 이름을 아예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라고 정했다. 민주주의 선진국 영국이 선거의 매관매수를 막기 위해 1883년 ‘부패 및 위법행위 방지법’을 만든 것과 비슷한 것이다. 법뿐만이 아니다. 선관위는 고발자와 위반자에 대해 각각 파격적인 보상금과 벌금을 부과하는 등 각종 제도적인 장치를 강화해왔다.

 정치·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돈 선거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대선 때 기업들이 선거자금을 내는 정경유착은 2007년 선거 때부터 거의 사라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돈 선거 고발에 대한 유권자 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의 발달로 유권자는 비리 증거를 확보하는 데 더욱 손쉬운 수단을 갖게 되었다. 법망·제도·의식·환경 등 여러 면에서 돈을 뿌리는 행위는 당사자의 패가망신을 가져올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일이 된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런데도 여전히 돈을 뿌리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안양시에서 어느 총선 예비후보가 자금을 살포한 혐의를 선거 조직관리 책임자가 선관위에 제보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예비후보는 공천신청을 하지 못했다. 제보된 매수 형태는 구태 자체였다. 유리한 보도를 해주는 지역언론이나 입당원서를 모아오는 브로커들에게 돈을 주었다는 것이다. 예비후보는 제보자에게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 팍팍 써서 사람을 모으라”고 했다고 한다. 예비후보의 혐의가 입증되면 이 제보자는 거액을 받게 된다. 이 사건 말고도 지난해 10월 이후 경찰에 적발된 금품수수 사례는 70여 건이나 된다.

 지금은 ‘돈 선거’에 관한 한 하나의 전환점이다. 일반인이 아니라 당원을 상대로 한 구(舊) 한나라당 경선에서 돈봉투를 뿌린 혐의로 국가의전 서열 2위 국회의장이 사퇴했다. 검찰은 어제 공관에서 그를 신문했다. 청와대 수석과 국회의장 비서관들도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민주당 경선에서도 돈봉투가 살포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선 돈봉투와 안양시 예비후보 사건은 이번 4·11 총선에서 자금 살포를 막기 위한 경종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선관위는 제보를 적극 장려하고 검찰은 수사를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 그래서 매수 후보는 아예 선거 판에 남아 있지 못하게 해야 한다. 유권자는 각별한 의식으로 돈 선거를 고발해야 한다. 포상금을 노린 것이라도 좋다. 이 나라에 민주선거가 도입된 지도 64년이나 됐다. 언제까지 돈봉투가 돌아다니도록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