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제대로 된 은퇴설계부터 받아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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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호 04면

은퇴 직후 5년 안에 알토란 같은 재산이나 건강·가정을 잃는 사례가 속출하는 건 삶의 태도를 은퇴 모드로 전환하지 못한 탓이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준비 없이 일을 놓으면 마음이 허하고 급해진다. 달콤한 이야기에 귀가 얇아진다. 은퇴 후 30년 뒤는 둘째 치고 우선 5년 뒤에 내가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비전을 설정해야 한다. 젊을 때는 은퇴 준비란 것이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증식하는 것이지만 은퇴 시기에는 그동안 얼기설기 쌓아 놓은 자산의 매듭을 풀어 은퇴 후 캐시플로(현금흐름)를 뽑아 내는 것이다. 은퇴 후 하산할 때 5년이라는 ‘크레바스’를 무사히 건너야 한다. 뭐니뭐니해도 근본은 돈이다. 음식점 같은 생계형 창업을 하지 않을 경우 재무설계와 관련해 적어도 네 가지를 명심하고 준비해야 한다.

돈 관리 이렇게

첫째, 제대로 된 은퇴 설계부터 받아 보자. 최근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조사에서 베이비부머의 4분의 1만이 은퇴 이후 필요한 자금을 계산해 보았다고 응답했다. 그나마 현재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은퇴 후 매월 얼마나 쓸 것인지를 따져서 그 차이를 보는 단순 계산기 수준이었다. 제대로 된 은퇴 설계를 받아 본 사람은 재산이 꽤 되는 극히 일부였다. 여기서 제대로라는 말은 은퇴 생활에서 당면하는 다양한 경우에 따라 은퇴 캐시플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는 것이다. 즉, 은퇴 설계를 통해 실현 가능한 자신만의 은퇴 생활 모습을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지금 내 자산이 놀고 있는지 확인해 보자. 은퇴가 멀지 않은 상태에서는 대부분 여러 형태의 자산이 있을 텐데 이것부터 점검해야 한다. 펀드 등 금융상품은 수익률이 제대로 나고 있는지, 당초 투자목적을 상실한 자산은 없는지, 원금 회복이 되지 않았다고 방치하는 자산은 무엇인지 등이다. 노는 자산을 재정비하여 움직이게 하는 것만으로도 은퇴자금 부족을 꽤 보전할 수 있다.

셋째, 투자상품으로 4층의 캐시플로를 준비하라는 것이다. 보통 은퇴상품 하면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이라는 3층의 캐시플로 구조를 생각한다. 그런데 연금은 초장기 상품들이라 중간에 해지하기 어렵고 해지 손실이 크다. 연금은 장기적으로 물가상승에 취약하다. 연금의 월 수령액은 20~30년 뒤 체감 가치로 보면 현재의 4분의 1 이하로 준다는 것을 감안하자. 따라서 3층의 연금은 은퇴 후 최소한의 생활비는 될지 모르지만 문화·오락 등을 즐길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3층 위에 한 층의 쿠션을 더 쌓아야 한다. 특히 은퇴 직후 5년은 사업 실패·사기·건강 이상·가정불화 등 예기치 못한 ‘크레바스’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4층의 쿠션이라면 자금 인출이 상대적으로 쉽고 ‘물가상승률 플러스 알파’의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는 장기채권 등의 투자상품을 고려할 만하다. 또한, 안전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상품을 잘 조합해 손실 가능성을 줄이고 5년 이상의 안정적인 수익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넷째, 은퇴 계좌를 만들라는 것이다. 은퇴 관련 상담이나 설문조사를 해보면 은퇴 준비를 못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그럴 돈이 없다”는 것이다. 자녀 교육비, 사업자금, 의료비 등 쓸 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쓰고 남은 것을 모아 은퇴자금을 만들기란 애초 어려운 일이다. 이 돈 저 돈 한 군데 놓고 쓰면 먼저 빼 쓰는 사람이 장땡이다. 은퇴자금이 남아날 리 없다. 따라서 은퇴 후 종잣돈으로 쓸 자산은 별도 계좌를 만들어 투자자산이나 다른 목적의 자금과 따로 관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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