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600만원 대기업 부장 부인 가정부 취업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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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부장을 남편으로 둔 주부 김모(51)씨는 몇 년 전 가사 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유학 준비 중인 대학생 딸과 고3인 아들 학비를 벌기 위해서다. 남편 월급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자녀 학비로 매달 600만원을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노후와 자녀교육 중 후자를 선택했다”며 “몇 년 전 빚 보증 잘못 서는 바람에 재산을 다 날려 노후만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피부과 개업의 김모(46)씨는 치과의사 부인을 둔 의사 부부다. 남들은 “얼마나 많이 벌겠느냐”며 부러워하지만 “노후만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고 말한다. 최신 장비가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탓에 리스로 고가의 장비를 구비하다 보니 빚만 잔뜩 쌓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금 당장은 수입이 괜찮지만 은퇴 후 어떻게 살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12일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는 “4655(46~55세) 때 제대로 은퇴 설계를 하지 못하면 100세까지 만회가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은퇴자산관리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보고서를 통해서다. 한정 연구위원은 “생애주기가 달라진 만큼 은퇴 설계도 달라져야 한다”며 “은퇴(56세) 후 국민연금 개시 기간(65세)까지 ‘마(魔)의 10년’은 물론 늘어나는 수명으로 맞게 될 80세 이후의 ‘제2의 마의 기간’을 잘 넘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려면 4655 시기에 제대로 된 은퇴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은퇴 컨설팅은 30대에 종잣돈을 모아 40대에 자산을 불리고 50대엔 관리한다는 개념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는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 중인 요즘 생애주기와는 잘 맞지 않는다. 4655에 이르러서야 소득이 비로소 많아지지만 동시에 자녀 교육·결혼에 대한 부담으로 지출도 가장 많다. 과거와 달리 느긋하게 자산을 불릴 수 없어졌다는 것이다.

 미래에셋 강창희 퇴직연금연구소장은 “30대에 적립식 펀드, 40대엔 주식 투자 늘리기, 50대엔 채권 투자로 자산 지키기의 ‘원 프로덕트’ 전략은 이제 맞지 않는다”며 “직업별·나이별로 적합한 은퇴 모델을 새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전업주부는 4655가 지나기 전에 남편 자산에만 기대지 말고 국민연금 가입 등을 통해 독립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의사 등 전문직은 큰 규모의 대출금을 가급적 빨리 갚고, 직장인들은 개인연금 등으로 국민연금 부족분을 채우는 동시에 제2의 직업·창업을 위한 준비를 서두르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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