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금요일 새벽 4시] ‘워첼 언니, 그건 고민할 게 아닌데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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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다 보면 가끔 질문이 잘못 전달될 때가 있습니다. 질문한 의도와 전혀 다른 답이 나오는 거죠. 이럴 때는 내색은 못해도 속으로 ‘흡!’ 하고 당황해서 얼른 그 답에 맞추거나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데 그래도 안 될 때는 ‘그게 아니고요~’ 하고 정정할 수밖에 없죠. 이번 주 만나본 인터뷰 대상자와도 이런 작은 당황의 순간들이 있었죠.

 첫째, AIA그룹의 에드먼드 체 명예회장. 한국 직장인들은 이른 나이에 원치 않는 명예퇴직을 하기도 하고, 직간접적인 퇴사 압력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금융직종은 더 그렇죠. 그런데 70세 넘어서도 직접 일을 보시니 부럽기도 하고, 살짝 약이 올라서(?) 퇴직 연령 질문을 했죠. 회장님은 즉시 열변을 토하십니다. “나 참…사람들이 왜 그렇게 일찍 은퇴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 내 은행원 친구들도 45세에 은퇴하고 골프만 친다니까요. 나는 일하면서 인생을 즐깁니다.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되도록 늦게 은퇴하세요!” 저기요, 회장님…돈도 없고, 늦게 은퇴하고 싶어도 그러기 힘들다니까요!

 둘째, 우울증을 이기고 뉴욕 변호사로 당찬 인생을 사는 엘리자베스 워첼. 한국에선 외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여성이 많습니다. 마침 워첼도 싱글 여성이니 충분히 공감할 이슈 같았습니다. “한국 여성 중엔 외모 콤플렉스로 우울해하는 사람도 많아요. 혹시 외모 때문에 고민해본 적 있으세요?” 금발 미녀 워첼은 좀 생각하더니 “음…그렇군요. 사실 저도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가슴이 너무 커서 심각하게 고민했었어요. 물론 지금은 극복하고 자신감 있게 지내요.” 저기요, 언니…그건 심각하게 고민할 문제도 아니고 극복할 필요도 없는 거 아닌가요.(훌쩍) <이소아>

◆정말로 있을까 싶었는데, 정말로 있었습니다. 김정운 교수의 작업실 입구에는 ‘여러가지문제연구소’라는 어엿한 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걸 처음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야기 속에만 있다고 생각한 가상공간을 현실에서 마주친 듯싶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여러가지문제연구소’의 연구원이나 소장을 자처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세상만사 별별 일에 관심과 근심이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빗대는 우스갯소리죠. 비슷한 걸로 ‘작은마음동호회’도 있습니다. 소심한 사람들이 ‘소심(小心)’을 우리말로 ‘작은 마음’이라고 풀어 농담처럼 하는 얘기입니다.

  김 교수는 짐짓 정색을 하며 “학교에 박사급 연구원이 여럿 있다. 큰 프로젝트도 많이 진행한다”면서 ‘진짜’연구소라는 걸 설명합니다. 어찌됐건 반가웠습니다. 여러가지문제연구소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게, 아니 농담처럼 하는 이런 말을 실제 연구소에 붙이는 감각을 본 게 반가웠습니다.

 그를 만나기 전, 제 나름의 가설을 하나 지니고 있었습니다. 통속적 표현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의 겉모습과 다른 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이었죠. 심리학자답게 그는 이런 제 마음을 읽었나 봅니다. 그가 스스로에 대해 ‘소심하다, 잘 삐친다, 귀 얇다…’고 읊는 순간, 정말이지 반가웠습니다. 또 한 명의 동호회 회원을 만난 겁니다. 그는 “남성성을 공공연히 내세우는 사람일수록 이런 면을 하나씩 갖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암암리에 활동 중인 작은마음동호회 회원들, 언제든 만나면 반갑게 인사 드리겠습니다. <이후남>

j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신문 ‘제이’ 84호
팀장 : 이은주
취재 : 백성호 · 이도은 · 이소아 기자
사진 : 박종근 차장
편집·디자인 : 이세영 · 김호준 기자 ,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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