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삶의 한 부분 된 ‘약자를 위한 예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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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소정

요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것이 대기업이다. 아마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가 너나없이 겪는 어려움 때문에, 비아냥이 더 쏟아지리란 생각이다. 최근 대기업 3세들이 우후죽순처럼 새 회사를 세우거나 다른 회사를 사들여 몸집을 불리고 알려진 빵집 말고도, 사진관, 소금, 골판지, 장례업, 콜택시, 학원 등에까지 세력을 넓히며 뻗쳐있다고 한다.

이는 소수의 사람 또는 회사가 사회의 거의 또는 전부의 부를 차지하게 되는 승자독식을 문제 삼은 것이다. 어떤 이들은 현재 상위 1%가 경제의 50%를 넘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부가 평등하지 않고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없는 자는 더 없게 되는 부의 불평등사회가 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빨간 등이 켜져 있는 것이다. 아울러 복지의 화두와 논쟁을 넘어 복지전쟁이 되어버린 것이 요즘의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다. 승자독식에서 밀려난 패자들에 대한 복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복지전쟁일지도 모르겠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완화될 조짐은 어디에도 없다. 승자가 될 것인가. 패자가 될 것인가. 뭐든지 준비하는 자의 몫이라 하는데, 진정 그럴까.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성경에 보면 약자에 대한 예외의 구절들이 있다.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에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도 또한 거둬들인 후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는 안 된다.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 되며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남겨둬야 한다.’

이웃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너는 이웃을 억누르거나 이웃의 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네가 품꾼을 쓰면 그가 받을 품값을 다음날 아침까지 밤새 네가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듣지 못하는 사람을 주저해서는 안 되며 눈이 잘 안 보이는 사람 앞에 걸려 넘어질 것을 놓아서는 안 된다.’

약자를 위한 예외. 이는 서로 도우며 함께 사는 공생의 삶을 사는 승자독식에 반한, 성숙함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자의 몫이라는 생각이다. 그러기에 약자를 위한 예외는 늘 우리의 삶 속에서 파격으로 만나야 하는 질서가 아닌가 한다. 우리가 사는 곳곳에서 그 파격을 삶의 일부분으로 만나는 이웃들이 있다. 어르신을 공경하는 노약자석의 배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주차장 등을 먼저 배려하는 자세,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가진 자들의 일방적인 것들에 대한 세심함 등을 삶의 현장에서 놓치지 않으려 부단히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노력은 언제고 가슴 울렁거리는 파격이라는 것을 약자의 당사들은 안다.

우리 앞에서 펼쳐지는 복지전쟁에서 과연 일방적인 억지로 그 예외를 만들어낼 것인지 아니면 서로 도우며 함께 사는 아름다운 공생의 자발성으로 만들 것인지 자세히 살펴야 한다. 오늘도 우리가 사는 곳곳에는 묵묵히 약자를 위한 예외가 아닌 자연스럽게 나눠야 할 삶의 한 부분으로 부딪치며 어우러지고 있다.

박광순 천안시사회복지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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