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 상주본 훔치고 숨긴 죄 10년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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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 소유권 분쟁에 휘말리면서 소재가 묘연해졌다.

국보급 문화재로 평가되는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상주본(尙州本)’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상주본을 훔치고 숨긴 혐의를 다퉈온 형사재판은 9일 일단락됐지만 상주본의 소재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대구지법 상주지원 형사합의부(재판장 김기현)는 이날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훔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구속 기소된 배익기(49)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배씨는 집수리 도중 해례본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대법에서 확정된 물품인도 소송 판결과 증언, 검찰 증거 등을 종합하면 해례본을 훔친 범죄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문제는 상주본의 행방이다. 배씨가 유죄판결에도 불구하고 무죄를 주장하며 계속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문화재청과 학계에서는 노심초사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상주본은 가격을 산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가치가 있다”며 “굳이 따진다면 1조원 이상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주본은 2008년 7월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배씨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집에서 고서적 한 권이 나왔는데 국보로 지정받고 싶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며칠 뒤 한 방송을 통해 “국보 70호인 훈민정음과 동일한 판본이 상주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국학진흥원이 감정에 나서 또 다른 진품 해례본임을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상주의 골동품상인 조모(67)씨가 “배씨가 고서적 두 상자를 30만원에 사가면서 해례본을 몰래 넣어 가져갔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소유권 다툼은 소송으로 이어졌고 지난해 6월 대법원이 물품 인도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에서 조씨 손을 들어 주면서 상황은 종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배씨는 상주본을 넘겨주지 않았다. 게다가 상주본의 행방도 묘연해졌다. 검찰과 법원에서 배씨 집을 세 차례나 강제집행하고 압수수색했지만 찾아내지 못했다. 배씨는 “해외로 유출되지는 않았다”는 언급만 할 뿐이다. 결국 검찰은 지난해 9월 배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선고를 지켜본 문화재청 관계자는 “훼손이 우려돼 회수가 시급한데 큰일”이라며 “배씨를 끈질기게 설득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조선 세종 28년(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의 해설서. 전체 33장의 목판본이며 창제 동기와 의미, 사용법 등이 담겨 있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첫 발견된 해례본은 국보 70호로 서울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미술관 이름을 따 ‘간송본’으로 불린다. ‘상주본’도 발견 지역 이름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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