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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죽지 않고 결혼했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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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에는 해마다 수천 통의 편지가 전 세계에서 날아온다. 마치 줄리엣이 실존하는 사람인 것처럼 그녀에게 자신의 연애 사연이나 고민을 털어놓는 편지다.

특히 밸런타인 데이가 다가오는 이맘때는 절절한 편지가 더 쇄도한다고 한다. ‘줄리엣 클럽’이라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이 그런 편지에 답을 해주고, 밸런타인 데이에는 가장 아름다운 편지를 선정해 시상도 한다.

그런데 만약 진짜 줄리엣이 편지를 받는다면 진중한 연애 상담을 해줄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 원작에서 그녀는 만 14세도 채 안 됐으니 말이다(로미오의 나이는 15~20세로 추정된다). 게다가 그녀가 로미오와 사랑에 빠진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닷새였다!

줄리엣이 그녀의 집인 캐풀릿가의 무도회에서 로미오를 처음 만난 것은 어느 일요일 저녁, 그들이 로런스 신부(神父)의 도움으로 비밀 결혼식을 올린 것은 바로 다음 날인 월요일 오후였다. 그 월요일에는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몇 시간 후 길거리에서 몬터규와 캐풀릿 양가 친척 사이에 또다시 싸움이 붙었다. 로미오는 줄리엣을 생각해 싸움을 말리려 했지만 줄리엣의 외사촌 티볼트가 로미오의 친구 머큐시오를 죽이자 그만 티볼트를 죽이고 말았다. 그 때문에 영주로부터 추방형을 받았다. 그날 밤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녀의 방에서 몰래 만나 눈물 속에서 첫날밤을 치렀다.

① 로미오와 줄리엣(1870), 포드 매독스 브라운(1821~93) 작, 캔버스에 유채, 135.7×94.8㎝, 버밍엄 미술관, 영국 버밍엄. 오른쪽은 체피렐리 감독의 1968년 영화.

 19세기 영국 화가 포드 매독스 브라운의 ‘로미오와 줄리엣’(그림 ①)은 다음 날인 화요일 동틀 무렵 로미오가 떠나는 장면을 묘사했다. 로미오는 날이 밝기 전에 베로나에서 모습을 감추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줄 알기에 서둘러 줄사다리에 발을 걸쳤다. 하지만 더 내려가지 못하고 다시 줄리엣의 목덜미에 키스한다. 그런 로미오를 줄리엣은 꼭 끌어안는다, 두 손에 핏기가 가시도록.

 마침내 로미오는 이웃 도시 만투바로 떠났고, 줄리엣은 목요일에 패리스 백작과 결혼하라는 부친의 명을 받았다. 다급해진 줄리엣은 로런스 신부와 의논해 42시간 가사(假死) 상태에 빠지는 약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납골당에 안치되면 신부의 연락을 받은 로미오가 구하러 와서 둘이 함께 만투바로 도망친다는 계획이었다. 결혼식이 수요일로 앞당겨지면서 줄리엣은 화요일 밤에 약을 삼켰다. 그러나 신부의 편지가 로미오에게 제때 전달되지 못했고, 줄리엣이 죽었다는 소식만 받은 로미오는 절망한 채 납골당으로 달려와 그녀 옆에서 음독자살했다. 한 발 늦게 깨어난 줄리엣은 로미오의 단검으로 목숨을 끊었다. 목요일 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말 속전속결의 러브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두 생명을 순식간에 소진해 버릴 정도로 강하고 찬란한 불꽃이긴 했지만, 얼마나 오래 타오를 만한 심지를 가진 불꽃이었을까? 그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은 서로를 얼마나 알았을까?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지 않았다면 나중에 이혼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는 이 점을 모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셰익스피어는 그들의 사랑을 완전한 사랑의 모범으로 포장하기보다 성급한 풋사랑이라는 점을 로런스 신부의 대사를 통해 강조했다.

 사실 로미오에게 줄리엣은 첫사랑이 아니었다. 로미오는 로잘린이라는 아가씨에 대한 짝사랑으로 방황하고 있었다. 독자나 관객은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한눈에 반하는 장면을 보고 ‘뭐야, 이 인간은 로잘린을 진짜 사랑하긴 한 거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셰익스피어 자신도 그것을 예상하고 신부의 입을 빌려 로미오에게 핀잔을 준다.

 “이게 무슨 변화냐? 네가 그토록 사랑하던 로잘린을 이렇게 금방 잊다니? 젊은이들의 사랑이란 과연 마음속에 있지 않고 눈 속에 있구나.”

 “제발 꾸짖지 마세요. 지금 제가 사랑하는 그녀는 은총에는 은총으로, 사랑에는 사랑으로 답해 줍니다. 로잘린은 그렇지 않았어요.”

 “로잘린이 알았던 게지, 네 사랑이 마음으로 쓴 시가 아니라 암기해 읽는 시라는걸.”

 그럼에도 로런스 신부는 이 철없는 연인들을 도와 결혼식을 올려주기로 약속한다. 그 무모할 정도로 대담한 열정만이 두 가문의 해묵은 증오와 폭력을 종식시킬 수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어린 연인들의 사랑이 진중한 것은 못 되지만, 그렇다면 양가(兩家)의 나이 든 가장과 그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식솔 간의 싸움은 성숙한 것일까?

②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신 위에서 화해하는 몬터규와 캐풀릿(1855), 프레더릭 레이턴(1830~96) 작, 캔버스에 유채, 231.1×177.8㎝, 애그니스 스콧 칼리지, 미국 조지아주.

 로미오의 친구이자 영주의 친척인 머큐시오는 혈기 넘치고 과격한 젊은이답게 자기 일도 아니던 양가 싸움에 신이 나서 끼어들곤 한다. 그러다 티볼트에게 죽는 순간에야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망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그러고는 그를 부축하러 달려온 로미오에게 악을 쓴다. “너희 두 집안 다 망해버려!”

 그 외침은 저주인 동시에 일말의 축복인 결말로 실현된다. 19세기 신고전주의 화가 프레더릭 레이턴의 작품(그림 ②)에서와 같이 영주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신 앞에서 그들의 부친에게 말한다. “그래, 두 원수는 어디 갔소? 캐풀릿, 몬터규! 보시오, 그대들의 증오에 어떤 채찍이 내렸는지를. 하늘이 그대들의 기쁨을 죽이기 위해 찾은 방법은 사랑이었소.” 결국 그들은 오랜 반목의 허무함과 어리석음을 깨닫고 악수를 나눈다. 철부지 사랑이 위대한 사랑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그러니 사랑의 바보가 된 줄리엣의 대사에 지혜도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녀와 로미오가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는 그 유명한 발코니 장면에서 그녀는 말한다. “당신은 몬터규가 아니라도 당신이잖아요….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것은 다른 이름일지라도 똑같이 향기로울 거예요. 로미오도 로미오라고 불리지 않아도 그가 지닌 사랑스러운 완전함을 유지할 거예요. 로미오 당신 이름을 버리세요. 그리고 당신의 일부도 아닌 그 이름 대신 나를 온전히 가지세요.”

가문의 이름과 자존심에 사로잡힌 맹목적인 증오보다는 차라리 어리석은 사랑이-비록 청소년기 이성에 대한 막연하고도 폭풍 같은 열정과 서로의 잘생기고 예쁜 외모에서 비롯된 경솔한 사랑일지라도- 더 나은 것이다. 그러니 ‘로미오와 줄리엣’이 여전히 인기 있는 이유는 이 세상에 수많은 쓸데없는 증오의 벽들이 사랑의 균열로 붕괴되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또 사랑에 많은 조건과 계산이 따르는 현실에서 오직 순수하던 시절에만 할 수 있는 그 무모하고 굽히지 않는 열정을 동경하기 때문도 아닐까.

문소영 기자

영화만 수십 편 … 그래도 떠오르는 건 올리비아 허시

‘로미오와 줄리엣’을 영화화한 작품은 미국 IMDb에 있는 것만 해도 수십 편이 넘는다. 이 중 현재까지 가장 인기를 누리는 작품은 프랑코 체피렐리 감독의 1968년 작과 바즈 루어만 감독의 96년 작일 것이다. 68년 작은 원작 주인공들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나이와 외모를 갖춘 두 주연배우 레너드 화이팅과 올리비아 허시가 화제를 모았다. 특히 청순한 미모의 허시는 이후 줄리엣의 대명사가 됐다. 루어만의 ‘로미오+줄리엣’의 경우에는 배경을 현대로 바꾸고 MTV적인 현란한 영상을 선보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각각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가 맡았는데 특히 디캐프리오는 이 영화로 스타로 부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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