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제조업 무너진 몽골 … 신자유주의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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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에릭 라이너트 지음
김병화 옮김, 부키
499쪽, 2만원

“구미 경제학자들은 과거 경험을 모조리 잊은 듯 가난한 나라들에 산업보호 대신에 개방과 자유 무역, 탈(脫)규제를 강요하고 있다.” 귀에 익은 이 주장,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의 발명품인가 했더니 『부자 나라는 어떻게…』에서는 더 자주 듣는다. 장 교수가 추천사를 쓴 이유를 알 만하다. 그는 “경제학 부문에 인간문화재 제도가 있다면 에릭 라이너트 교수는 그 1호로 지정돼야 한다”고 저자를 추켜세웠다. 자유방임주의를 계승한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이 의도적으로 역사 책에서 지워 버린 ‘다른 전통(Other Canon)’에 대해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백과사전적 지식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2008년 신고전파 경제학의 대안이론을 제시한 공로로 뮈르달 상을 수상한 저자는 부자 나라의 성공 비밀을 캐냈다. 답은 제조업 육성과 산업화 초기의 강력한 보호정책, 적절한 시기의 자유무역이다. 13세기 이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나 피렌체 같은 도시국가와 네덜란드가 부유해진 것은 경작할 땅이 거의 없어 제조업과 해외 무역에 특화한 결과였다. 영국은 이를 체계적으로 모방한다. 15세기 후반 영국은 모직공업 육성을 위해 보조금과 관세 정책을 동원했고, 네덜란드가 향신료에 대해 그랬듯 스페인산 양모를 모두 사들인 다음 불태우자는 생각까지 했다. 영국이 경제 발전에서 성공모델이었다면 스페인은 전형적인 실패 모델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이 스페인으로 유입됐으나 생산시스템에는 투자되지 않았다. 영국은 제조업을 보호 육성해 성공했고, 스페인은 농업을 보호하려다 제조업을 무너뜨려 실패했다.

 하지만 신고전파 경제학자들, 오늘날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런 과거를 잊고, 아니 숨기고 가난한 나라들에 정반대의 정책을 강요하고 있다. 몽골의 경우 1991년 경제개방 이후 4년 만에 거의 모든 산업의 생산 물량이 90%나 감소할 정도로 초토화했다. 세계은행 사람들은 “기업 문화가 없어서 그렇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전도사인 세계은행이야말로 몽골의 경제 실패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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