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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명동 풍경은 … 남장배우가 여성팬과 결혼도 했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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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956년 이른 봄 서울 명동의 한 선술집. 막걸리를 마시던 시인 박인환이 휴지에다 글을 써 내려갔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 옆에 있던 작곡가 이진섭은 이 시를 오선지 위에 옮겼다. 노래는 당시 최고의 테너 가수였던 임만섭이 불렀다. 명동샹송이라고 불리는 ‘세월이 가면’의 탄생 비화다.

 1950~60년대 명동의 다방과 주점에서는 이런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예술가들의 본거지가 명동이었기 때문이다.

이봉구씨

 ‘현대 문화예술의 메카’ 서울 명동을 주제로 한 기획전이 열린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19일부터 3월 31일까지 열리는 ‘명동 이야기’전이 그것이다.

 이번 특별전은 당시 신문기자 생활을 하면서 명동을 주무대로 문화예술인과 교류한 명동백작 이봉구(1916~1983)가 ‘명동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세월이 가면’의 시구를 인용해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명동의 변화상을 300여 점의 사진과 자료로 보여준다.

 명동이 종합예술의 장소가 될 수 있었던 원인은 ‘다방’과 ‘주점’의 영향이 컸다.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토론을 했다. 화랑이 없었기 때문에 화가나 조각가의 작품전시회도 다방에서 열렸다.

 모나리자에는 이중섭·백영수 등 화가들이, 동방문화회관에는 시인 박인환과 김수영이 들락거렸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1953년 백영수 화백의 개인전이 열렸던 모나리자 다방 풍경을 되살렸다. 시인 김수영이 1959년 춘조사를 통해 생전 유일하게 출간한 시집 『달나라의 장난』의 육필원고와 원고 수정본도 공개된다. 영원한 햄릿 김동원은 당시 실제 착용한 햄릿 의상과 연기노트를 내놨다.

최모란 기자

사진 설명
① 여성국극 배우와 팬의 가상 결혼식

1950년대는 여성국극(女性國劇)이 인기였다. 여성 국극은 모든 단원이 여성인 극단이다. 남자 역할도 여배우가 한다. 국극 배우 김진진(1933~)은 ‘영원한 공주’라는 별명을 얻었다. 남자 역할을 했던 배우들은 여성 관객들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았다. 배우 조금앵(1930~)은 팬과 가상 결혼식까지 올렸다.

② 소설가 김동리가 쓴 방명록

1953년 9월 14일 신사실파 화가 백영수(1922~) 화백의 전시회가 모나리자 다방에서 열렸다. 제대로 된 화랑이 없던 시절 다방에서 열린 최초의 개인전이었다. 사진은 소설가 김동리가 남긴 방명록.

③ 동방문화회관 개관식

1955년 청년실업가 김동근은 명동의 예술인들을 위해 동방문화회관이라는 다방을 열었다. 3층은 회의실, 2층은 문인들의 집필실, 1층은 다방으로 구성 된 문화공간이었다. 당시 개관식에는 함태영 부통령을 비롯, 많은 문화계 인사가 참석했다.

자료 :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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