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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외국 경제개혁 들여다본다’는 북한 김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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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경제 개혁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북한 고위 관리가 외신에 밝혔다. 북한에선 금기시되던 개혁이라는 용어를 AP통신과의 회견에서 입에 올린 것이다. 김정일이 생전에 “나에게 어떤 개혁도 바라지 말라”고 했던 것에 비하면 주목할 변화다. 김정은의 배다른 맏형이자 사실상 해외 망명생활을 하는 김정남은 김정일에게 개혁·개방을 강조했다가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김정일이 사망한 지 한 달 만에 북한 지도부에서 개혁이라는 말을 꺼낸 것이다.

 이 발언을 한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북한은 김정일이 개혁을 거부한 뒤로 ‘경제 개선’이라는 말을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개선’이라는 단어는 개혁과는 의미가 다르다. 북한에서 개선이라는 말은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는 오히려 강화시키되 경제특구에 한정하는 부분적인 개방을 통한 해외 투자유치 등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시장경제 제도를 상당한 정도로 도입하는 개혁을 시도했던 2002년 ‘7·1조치’조차 공식 명칭은 ‘경제관리 개선’이었다. 그러나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경제 개혁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개혁·개방에 나선 나라들의 경험을 수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김정일은 생전에 김정은 시대의 경제 정책 방향을 정해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김정일이 중국을 두 차례 방문한 뒤 노선을 정했다고 한다. 김정일 방중 직후 중국을 방문한 문경덕 평양시 책임비서는 중국 당국자들에게 ‘중국의 경험을 배우고 수용하려 한다’고 발언함으로써 개혁노선이 정해졌음을 시사한 바 있다. 이런저런 정황들이 북한이 나름대로 개혁에 시동을 걸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의 흐름에서 고립된 채 국제사회와 대립만 거듭해온 북한이 결국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희망적 관측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변화 조짐은 우리에겐 반가운 일이다. 물론 북한이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는 수준의 개혁·개방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면 섣부를 것이다. 그러나 젊고 해외생활 경험이 있는 김정은이라면 지금까지보다는 과감한 개혁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해볼 만하다. 김정일 역시 1983년 중국 선전(深) 지역을 처음 방문한 뒤 합영법을 제정하는 등 개혁을 시도했었다.

 ‘개선’이든 ‘개혁’이든 북한의 변화가 궁극적으로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핵 문제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의 개혁이 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해외 투자유치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시장경제 제도 등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를 과감히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 김정은의 ‘외국의 경제개혁 사례에 대한 관심’이 북한과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촛불’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