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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멍들게 하는 단체장 선심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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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해석
광주총국장

전남 장성군은 인구가 4만6245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주민이 계속 줄고 있고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해 소득도 낮다. 주민 넷 중 한 명은 65세 이상 노인이다. 그래서 문화예술을 향유할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럴 욕구가 있는 주민이라면 시설과 프로그램이 좋은 광주광역시 문화예술회관으로 가면 된다. 자동차로 3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다.

 이청 군수 시절인 2009년 2월 장성군은 ‘문화 인프라 구축’을 내세워 장성읍에 문화예술회관을 착공했다. 건물 중앙부에 설계한 대공연장은 700석 규모였다.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을 태운 채 지하에서 무대 앞까지 오르내릴 수 있는 시설도 설계했다. 이 군수는 당시 “문화예술회관 건립을 통해 미래의 먹거리인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인 문화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럴싸한 이 말이 실현됐을까.

 장성군은 이 문화예술회관의 핵심 공간인 대공연장을 휑하게 비워 놓은 채 지난해 9월 소공연장·전시실·사무실을 먼저 개관했다. 정부·전남도 지원금 37억원 외에 없는 살림에 군비 147억원까지 무려 184억원을 투자하고도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두 손을 든 것이다. 대공연장을 완성하려면 60억원이 더 든다. 국비·도비 지원은 끝나 전액을 군비로 충당해야 하지만 영세한 군 재정으론 힘들다. 게다가 대공연장을 완성해 봤자 효용은 크지 않다. 반면에 적지 않은 유지관리 비용이 들어간다는 데에 김양수 현 군수의 고민이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소공연장(206석)으로도 웬만한 공연이나 행사를 소화할 수 있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장성군처럼 과욕에 의한 예산 낭비가 전국 곳곳에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장과 공무원들은 입만 열면 예산 부족 타령을 하고, 지역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경쟁력을 높이려면 지역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사용해야 한다. 그 자원 중에서도 공공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지역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한정된 예산을 꼭 필요한 곳에 투입해야 한다. 그러기는커녕 엉뚱한 곳에 잘못 쓰는 바람에 재정 부담이라는 부메랑에 맞아 비틀거리면서 정작 필요한 사업을 못해 허둥대는 지방자치단체가 한둘이 아니다.

 선출직인 단체장은 표를 의식해 시급성과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일을 벌이기 쉽다. 재정에 대해 잘 몰라 ‘용감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단체장을 보좌하는 직업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단체장 말 한마디에 수백억원이 드는 사업들을 내지르는 공무원들에게 기본적인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그 사업비가 단체장 개인의 쌈짓돈이 아니라 주민이 알토란 같은 세금을 내 만든 공공예산이라는 걸. 단체장은 임기가 끝나 떠나면 그만이지만 지자체 재정은 멍들고 후유증은 오래간다. 그 피해는 지자체를 지키는 공무원에게도 미친다는 걸 일깨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