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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마지막 해 MB정부가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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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명림
연세대교수·정치학

세밑이 엊그제였는데 벌써 새해 첫 달의 절반이 지나갔다. 삶에서 시간보다 더 빠른 것이 있을까? 특히 뭔가를 좀 해야겠다고 결심할 경우 시간은 더욱 빨리 도망가 버린다. ‘휙’ 지나가고 ‘휙휙’ 달아나는 게 시간의 속성이요, 삶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세밑’ ‘새해 첫날’ ‘첫 달’과 같은 시간의 매듭들은 우리로 하여금 좀 더 경건하게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미래의 꿈을 생각하게 해준다. 자주 뒤척이며 새벽잠을 설치게 되는 것도 이맘때다. 우린 몇 번 시간의 매듭들을 반복하다 세상을 뜬다. 하여, 시간의 매듭은 경건을 위해 신이 주신 선물이 아닐까 싶다. 정신 없는 오늘날의 삶 속에서 ‘잠시 멈춤’ ‘일단 정지’가 주는 내면 성찰의 효과 때문일 것이다.

 “오지 않은 시간들은 언제나 장밋빛이었는데, 지나간 시간들은 왜 이리 안타까움뿐인지. 살아갈 날들은 늘 설렘과 희망으로 가득 찼었는데, 살아온 날들은 왜 이리도 아쉬움과 회한으로 뒤범벅인지. 좀 더 잘할 수는 정녕 없었던 것인지…. 우린 과연 어느 정도나 꿈을 이룬 채 삶을 마감하는 것일까? 누군들 잘 살아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과연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2012년 우린 이명박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라는 또 하나의 시간의 매듭을 맞는다. 현대인들의 삶은 공동체의 성격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육아·교육·등록금·노동·임금·정리해고·물가·주택·복지·형평·예산배분·부정부패·국제관계·전쟁·병역·환경·의료보험·노후·연금 등 개인 삶과 관련된 많은 것은 공동체의 정책방향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인간 삶의 공동체성을 말한다. 그 때문에 정권교체를 포함해 공동체의 시간 매듭들은 많은 경우 수많은 개인의 삶의 매듭 전환으로 연결된다.

 마지막 해를 맞는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이루고 이루지 못하였는가? 처음 출범할 때의 공약들을 생각할 때 대통령이건, 정부인사들이건, 반대세력이건, 일반 국민들이건 참으로 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갖게 되지 않나 싶다. 시간은 1년밖에 남지 않았고, 상황은 지난 4년보다 훨씬 더 나쁘다. 서민경제 발전, 고도성장, 빈부격차 해소, 부정부패 척결, 실용주의, 준법, 남북관계와 북핵 해결, 국격 제고 등 많은 약속이 있었으나 오늘의 상황은 어떠한가? 4년을 돌아보며, 이제 대통령과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다행히 ‘아직’ 1년이 남았으니 점검과 교정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욱 어렵고, 힘은 더욱 빠지며, 사위로부터의 공격은 더 거세질 것이다.

 첫째는 엄정한 자기 감사(監査)다. 청와대 감찰팀장, 감사원 감사위원, 현직 검사를 포함해 현 정부는 이례적으로 감독과 감사·교정 라인 자체가 부패했다. 최근 빈번히 드러나고 있는 정권 중심과 주변의 부정부패는 감찰 부문의 붕괴로 인해 더욱 심각한 악취를 풍길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특히 BBK 문제, 낙하산 인사, 사찰과 축출, 내곡동 사저, 당내 경선, 에너지 외교, 4대강 사업, 종편 허가 등을 둘러싸고 이미 많은 ‘무죄평결’과 숱한 ‘불법·부정부패·꼼수·편법·탈법’의 고리가 드러나고 있다. 이 문제들은 차기 정부로 넘겨지면 더 거센 진실규명, 특별조사, 사법처리의 폭풍에 휩쓸리게 될지 모른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남은 1년간 해야 할 일의 하나는 위의 문제들에 대해 가족·측근·고하·연줄을 막론하고 철저히 조사해 스스로 진실규명과 적법처리를 단행하는 것이다.

 둘째는 적정 정책수정이다. 평범한 국민의 위치에서 볼 때 다음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ABMB(Anything But MB) 노선은 바람직한 선택이라 할 수 없다. 극단에서 극단으로의 전이는 국가로서는 너무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를 포함해 현 정부의 극단적 선택들이 야기한 문제를 실용적 중도로 돌려놓는 결단이 있기를 소망한다. 국민과 다음 정부가 이 정부의 부채로 인해 허덕이지 않게 해주는 것은 최소한의 책임윤리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공공성의 회복이다. 심각한 사사화(私事化)로 인해 국가기구와 공적 조직들의 공공성은 지금 심대하게 무너져 있다. 행정조직, 국회, 감사기구, 지자체, 공사(公社), 정당, 방송…. 너무도 많은 영역의 정책선택·운영·인사·예산배분이 그러하다. 공공성 회복은 절박하고도 시급하다.

 ‘임기 마지막 해’라는 엄숙한 시간 매듭을 대통령과 정부가 잘 활용하길 간곡히 기원드린다. 가장 현명한 안전과 명예회복의 길은 자기 교정이기 때문이다.

박명림 연세대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