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 무능한가 정치적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검찰이 이번 정권 들어 가장 야심차게 기소했던 전 정권 인사 두 명에 대한 무죄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13일 열렸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미화 5만 달러 수뢰 혐의 항소심에서 1심에 이어 무죄가 선고됐고,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한 12일 대법원 판결도 무죄로 확정됐다. 한 전 총리의 경우 별건으로 기소된 9억원 수뢰 혐의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이 진술에만 의존해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정 전 사장의 경우는 검찰이 공소사실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특히 검찰이 기소한 내용인 법인세 부과취소소송 중단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부분에 대해선 조정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검찰의 기소가 애당초 무리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처지가 됐다. 이와 함께 더 큰 문제는 검찰이 기소하면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공소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는 등의 무능을 여지없이 드러냈다는 점이다. 검찰의 수사 실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비판은 이래서 나온다. 실제로 최근 들어 검찰의 무능 사례들은 빈번하게 목격된다. 지난해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 로비 사건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광우병 파동의 진원지였던 PD수첩 사건도 무죄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정치사건뿐 아니라 경제사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상반기 증권가를 떨게 했던 주식워런트증권(ELW) 부당 거래 혐의로 기소된 12개 증권사 대표들에 대한 1심이 진행되면서 무죄판결이 줄을 잇는다.

 현재 법원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 이후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면서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제동을 걸고 있다. 한데 검찰은 진술에 의존해 기소한 뒤 법정에서 말을 바꾸면 맥을 놓아버리는 구태를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형사재판에선 진범이더라도 증거가 없는 한 무죄라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배한다. 증거를 찾아야 할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기소하곤 증거를 못 대 번번이 무죄판결 수만 늘려주니 정치검찰이라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검찰은 기본으로 돌아가 확실히 증거를 찾아내고 기소하는 수사 실력부터 길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