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어느 경지에 이르러야 벼슬에 나서는 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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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호 36면

『맹자』는 처음부터 서릿발 같은 꾸짖음으로 시작한다. 양혜왕이 자기 나라를 찾은 맹자에게 어떻게 하면 나라를 이롭게 할 것인가를 묻자, 맹자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왕께서는 어째서 이(利)를 말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하면 그 아래 대부들도 ‘어떻게 하면 내 영지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이고, 선비와 서민들도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입니다. 이렇게 위·아래가 다투어 이익을 취하려 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4>『맹자』와 맹자

아무리 전국시대 7국 중의 하나라지만 그래도 일국의 최고통치자인데, 맹자는 그 앞에서 전혀 거침이 없다. 『맹자』의 한 구절 한 구절은 이처럼 대통을 쪼개듯 논리 정연하다. 제선왕이 맹자에게 묻는다. “무(武)왕이 주(紂)왕을 토벌했는데, 신하가 임금을 죽여도 되는 것입니까?” 주나라 무왕은 원래 은나라 주왕의 신하였는데, 주왕이 폭정을 일삼자 이를 정벌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맹자가 답했다. “인을 해치고 의를 해치는 자는 남을 못살게 구는 잔인한 일부(一夫)에 불과합니다. 저는 일부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무왕의 행위는 반역이 아니라 정당한 혁명이었다는 말이다.

맹자는 쉰 살에 세상으로 나가 20년간 여러 나라를 주유하며 덕과 인의로 다스리는 왕도정치를 역설했고, 고향으로 돌아와 공손추와 만장 같은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이 기록이 『맹자』다. 모두 14편으로 돼 있는 『맹자』는 서두에 나오는 양혜왕과의 문답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정치철학서다. 동시에 인간의 정신을 분발시키는 훌륭한 자기수양서이기도 하다.

동심인성(動心忍性)의 출전인 이 구절은 폐부를 찌른다.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시키려 할 때는 먼저 그 정신을 괴롭히고 근골을 아프게 하며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은 곤궁하게 하여, 하는 일마다 의지와 엇갈리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음을 분발케 하고 인내심을 강하게 하고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체로 인간은 실패한 다음에야 분발하고, 괴로움이 안색이나 목소리에까지 나타나야 비로소 정말 알게 되는 것이다.”

『맹자』는 『논어』『대학』『중용』과 함께 사서(四書)로 꼽히지만, 그중에서도 읽기에 가장 부담 없고, 그 내용은 현재에도 여전히 타당하다. 또한 우화가 풍부하고 가슴을 파고드는 비유와 촌철살인의 경구가 넘쳐난다.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와 인자무적(仁者無敵), 호연지기(浩然之氣), 자포자기(自暴自棄) 같은 말의 출전이 바로 『맹자』다.

발묘조장(拔苗助長)도 맹자가 호연지기를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를 설명하면서 들려준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 농부가 모내기를 하고는 벼가 어느 정도 자랐는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매일같이 논에 나가 지켜봐도 모가 빨리 자랄 기미를 보이지 않자 자신이 모가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하고, 자기 논의 모를 하나씩 잡아 뽑아 키를 높였다. 농부는 저녁에 집에 돌아와 하루 종일 모를 잡아 뽑느라 힘들었다고 자랑했다. 이튿날 아들이 논에 가보니 벼는 하얗게 말라죽어 있었다. 모를 억지로 자라게 하려다 도리어 죽여버린 것이었다.”

내가 『맹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난세를 살다 간 한 성인(聖人)의 인생철학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삶(生)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의(義)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둘을 다 가질 수 없다면 나는 삶을 버리고 의를 택할 것이다.” “부귀도 나를 흔들 수 없고, 빈천도 나를 바꿀 수 없으며, 위세와 무력도 나를 꺾을 수 없어야 비로소 대장부라고 하는 것이다.”(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사랑보다도,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나는 진실을 원한다”고 말했다. 소로는 틀림없이 『맹자』를 읽었을 것이다.)

맹자는 군자삼락을 이야기하면서 “천하의 왕 노릇 하는 것 따위는 들어 있지 않다”고 재차 강조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말한다. “일월(日月)의 밝은 빛은 작은 틈새도 남김없이 비추고,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도에 뜻을 둔 군자는 어느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알다시피 맹자의 왕도정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국강병과 무력을 통한 영토 확장이 제1의 목표였던 시대에 맹자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그대로 남았다. 오히려 20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더 절실하게 와닿는다.

2012년은 선거의 해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새로 뽑는다. 출마할 정치인들이나 표를 찍어줄 유권자들이 『맹자』를 한 번이라도 읽어본다면, 그래서 이(利)가 아니라 인의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면 아마도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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