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경제] 불경기 땐 매운맛 당긴다? … 진짜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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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매운 음식이 당겼다면 불경기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해 뇌가 보내는 신호였을지 모른다. 지난 1년간 매운맛 고추장·고춧가루·양념 매출이 크게 늘었다. ‘불경기에 매운맛을 찾는다’는 속설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식품업체인 대상 청정원이 지난해 9~12월 분기 매출을 분석한 결과 매운맛 고추장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가장 매운맛(5단계)인 ‘순창 불타는 매운 고추장’과 바로 아래 단계인 ‘순창 매운 고추장’의 매출이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26%, 16%씩 늘었다. 고추장 전체 신장률은 8%였다. 이 기간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경제행복도체감지수’는 3년 만에 하락세였다. 지난 4분기 지수는 46.7(기준 지수 ‘정상’이 50)로, 1년 전보다 2.7% 떨어졌다. 지수를 도입한 2009년 1분기 이후 계속 상승하다가 최근 1년 처음 하락세를 탔다. 이런 상황이 입맛에 반영됐다는 게 식품업계의 중론이다.

 양념류와 고춧가루도 매울수록 잘 팔렸다. 청정원 ‘매운 갈비양념’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65% 늘었다. ‘매운 고춧가루’ 매출은 50% 신장해 고춧가루 전체 성장률인 35%를 크게 웃돌았다. 청정원 관계자는 “경험상 불경기에는 매운맛이 인기인지라 강도를 세분화한 제품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매운맛의 인기 비결은 ‘병 주고 약 주고’다. ‘맵다’는 느낌은 맛이 아니라 일종의 통증이다. 매운 음식에 혀가 ‘공격’을 당하면 뇌가 응급처치를 시도한다. 이때 분비되는 엔도르핀이 쾌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다. 고통으로 고통을 잊는다고나 할까. 캡사이신은 통증 완화용 연고제에 사용되는 활성성분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도 받았다. 식품업체는 매운맛 제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오뚜기는 청양고추로 매운맛을 살린 ‘기스면’을 지난해 말 출시해 한 달 만에 800만 개 이상 팔았다. 농심도 얼큰함을 강조한 ‘쌀국수 짬뽕’을 최근 출시해 매운맛 전쟁에 돌입했다. CJ제일제당도 지난해 ‘CJ 딴 떡볶이는 화끈하다’를 내놓았다.

심서현 기자

◆캡사이신(capsaicin)=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무색의 휘발성 화합물. 식욕·신진대사 촉진, 지방 분해 효과가 있다. 캡사이신이 신체 통각세포와 접촉하면 자극 신호가 척수를 통해 대뇌로 전달돼 통증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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