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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아문센에게 남극 정복 영광 내준 스콧, 저무는 대영제국 상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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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얼음의 제국
그들은 왜 남극으로 갔나
에드워드 라슨 지음
임종기 옮김, 에이도스
425쪽, 1만7500원

책 앞머리에서 1905년 발간된 남극 부분의 지도를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륙 주변부 일부 섬만 표시됐을 뿐 가운데는 텅 빈 공간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100여 년 전인데 왜 이럴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 전까지 아무도 가본 적이 없어 남극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다. 공란으로 남은 것은 단순한 지리적인 공간만이 아니었다. 극지 과학 콘텐트도 그렇게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미국의 과학사학자로 페퍼다인대와 조지아대 고등교육연구소 교수인 지은이는 인류가 그 빈칸을 채워나가는 과정을 과학사와 문명사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스콧(뒷줄 오른쪽)이 이끄는 영국의 남극탐험대.

 지은이는 남극대륙 탐험을 과학활동 및 제국주의와 동의어로 여긴다. 19세기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을 격퇴한 뒤로 할 일이 별로 없자 남는 힘을 극지 탐험에 쏟았는데 그 전통이 남극탐험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19세기 말 영국 민족주의자들은 조국을 지키고 식민지를 유지하며 해상무역에 대한 지배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해군 활성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극지탐험은 그 중요한 해군을 양성하고 훈련하는 수단의 하나로 간주됐으며 극지탐험 자체가 대영제국 확산의 첨병이었던 것이다. 당시 해군 탐험대원들은 자신을 과학자, 지리적 발견을 과학 활동으로 여겼다.

 영국 해군은 수많은 극지탐사 끝에 남극대륙의 지도를 조금씩 완성해갔고, 관련한 과학 지식도 쌓았다. 그 종착점은 남극점 최초 도달 경쟁이었다. 그 영광은 노르웨이인 아문센이 차지했다. 그 뒤를 따른 영국인 스콧은 귀로에 목숨까지 잃었다.

 오랫동안 공을 들였던 남극에서 노르웨이인에게 영광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한 영국인들은 들끓었다. 하지만 스콧 영웅 만들기로 아픔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스콧은 인내심과 헌신의 상징으로 묘사됐다. 하지만 양차 세계대전 이후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평가도 바뀌었다.

사람이 끄는 썰매를 타고 나갔다가 경쟁에서 밀린 스콧은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시대의 저무는 대영제국을 상징하는 ‘올드보이’로, 추위에 강한 개를 이용한 개썰매를 이용해 1착에 성공한 아문센은 혁신적인 신세대로 평가받기에 이른 것이다. 지은이는 얼음의 대륙에서 인간 본질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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