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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외국인 투자기업도 ‘우리 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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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김종갑
한국지멘스 대표이사·회장

“누가 ‘우리 편’인가?(Who is us?)”

 1990년대 초, 당시 하버드대의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교수가 던진 화두다. 자본의 국적이 중요한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던 때, 그는 외국인 직접투자도 내국인 투자와 다름없는 ‘우리 편’이라고 결론짓는다. 국가경쟁력은 국내에 본사를 둔 기업(국내자본)의 수익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의 교육 및 숙련도에 의해 좌우된다고 했다. 좋은 인력만 있으면 자본은 따라오게 마련이라면서 노동장관 재직 시 저소득층 훈련에 역점을 뒀다. 혜택을 덜 받은 계층의 교육 지원을 강조한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의 정의론 또는 공동체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

 우리나라는 자본의 국적에 대한 입장이 헷갈린다. 외국인 직접투자를 우대도 하고 차별도 한다. 내국인 투자를 보완하기 위해, 외국 기술과 경영기법을 도입하기 위해, 또는 경쟁국 못지않은 처우를 위해 세제감면과 공장입지 제공 등의 우대를 한다. 그러나 사실 국내 사업환경은 외투기업에 불리하다. 연구·개발·제조 등 핵심 부문을 국내에서 수행해도 비슷한 상황이다. 제도보다는 행정적·관행적 차별이 대부분이다. 한편으로 국외로 유출되는 자원인 해외취업과 해외투자를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는 황당한 제도도 있다.

 투자 유치는 지원하고 운영은 차별하는 것은 이율배반이고 국가발전 전략과도 맞지 않다. 머리(경제논리)로는 우리 편이나 가슴(외국인에 대한 정서)으로는 완전한 우리 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사고(事故)다. 해외유출 지원은 더 심각한 방향착오다.

 최근 외투기업의 한국 사회 기여도가 미흡하다는 비판적 보도들이 있다. ‘사치성 소비재’를 수입 판매하는 기업, 이익을 재투자하지 않고 배당하는 기업, 기부활동이 적은 기업들이 지적받았다. 그러나 외투기업의 사업이나 행태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정책과 사업환경이 낳은 산물이다. 이들을 탓하기 전에 먼저 투자 유치국의 문제가 아닌지 살펴봐야겠다.

 첫째, ‘사치성 소비재’ 수입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수출은 선, 수입은 악’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건전한 소비조장은 필요하지만 외국인 제조 수입기업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우리가 수출한다면 ‘고급 브랜드 제품’으로 자랑하겠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디자인·브랜딩 역량이 좀 모자란다. 우리 탓이다.

 둘째, 투자수익의 유보 또는 본사 배당 여부는 회계상 선택의 문제다. 이익을 본사에서 집중 관리하고 적기에 증액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이미 투자를 한 업체의 ‘증액 투자’가 ‘신규 투자’를 훨씬 상회한다. 지속적으로 증액 투자가 이뤄지도록 관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이상 투자의향이 없다면 이는 국내 투자환경이 다른 대안보다 불리하기 때문이다. 역시 우리 탓이다.

 셋째, 외투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이 증가추세이긴 하나 국내기업에 비해서는 미흡한 것 같다. 외국은 개인기부 중심인 데 비해 우리는 기업기부 중심이란 차이가 이런 결과를 낳은 것 같다. 국내 기업의 매출 대비 기부액(0.24%)은 기부 최고 선진국인 미국(0.11%)보다 높다. 하지만 이건 기부 관행의 차이다. 외투기업이 한국 사회에 갖는 관심과 책임감에는 근본적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이제 ‘외투기업 대표’ 입장에서 이 문제를 보겠다. 지멘스는 독일에 본사가 있지만 193개국에 진출한 초국적(超國籍)기업이다. 독일이든 한국이든 사업환경이 유리한 곳에 투자한다. 한국에는 경쟁사보다 협력사가 더 많고, 경쟁사와 협력하는 사례도 흔하다. 한국지멘스의 성공 여부는 회사의 제한된 자원 중 여하히 많은 자원을 한국으로 유치해 사업을 성장·발전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지금 한국지멘스의 주된 경쟁사(?)는 중국지멘스다. 이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도와줄 우군은 공동 수혜자인 한국밖에 없다.

 외국인의 한국국적 취득자가 늘어남에 따라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업사회의 다문화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우선 국민들이 외투기업의 순기능을 이해하고, 가슴으로도 ‘우리 편’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일관성 있는 내국민 대우 정책과 함께 자유롭고 공정한 기업환경 조성에 더 노력해야 한다. 라이시 교수의 지적대로 최고의 인적 자원을 확보하고 최고의 기업환경을 만든다면 최고의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들이 국내에서 터를 잡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잘하면 외국자본이 들어와 우리 편도 되고, 잘못하면 국내자본도 영원히 떠나버릴 수 있다.

김종갑 한국지멘스 대표이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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