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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개성을 표현해 주는 헤어디자이너 일은 천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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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씨는 고객에게 “행복을 전하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영회 기자]

“이모가 운영하던 미용실이 놀이터나 다름없었어요”

 리챠드 프로헤어 쌍용점 부원장 김성희(35)씨. 그는 13년의 미용경력을 가진 베테랑 헤어 디자이너다. 어릴 적부터 이모와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그는 20살 무렵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고생길이 훤히 보인다”며 부모님은 만류했지만 굴하지 않고미용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체계적으로 배워 나갔다. 그의 나이 스물 셋에 지금 직장인 리챠드 프로헤어에 입사 했다.

그때부터 천안에서 손꼽히는 헤어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미용사 보조로 출발해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 미용에 남다른 자신감과 열정이 있어서인지 기술을 빠르게 습득했다.

 디자이너가 돼서는 새벽 2시까지 특수머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 때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잠이 부족해 몸은 피곤했어도 미용이 좋았고 예쁘게 만들어지는 헤어스타일에 만족을 느꼈다.

 “2006년 수석 스타일리스트, 2008년 헤드 수석에 이어 2009년 9월 부원장으로 고속 승진했어요. 지금의 자리를 쉽게 얻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는 있지만 한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온 결과라 생각하죠. 실력이 아니라 신뢰가 바탕이 돼 지금 이 자리까지 왔고요. 헤어 디자이너답게 멋지게 살려고 노력했고 내가 꼭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살아 왔어요.”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늘 새로운 변신을 꾀하며 사는 김씨. 그는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고 순수해 ‘만년 소녀’ 라는 애칭이 따라 다닌다. 꿈을 간직하고 그 꿈을 펼치려 노력하는 모습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어렵고 힘든 시기는 있었 다. 근 10년을 쉬지 않고 한 자리를 지켜 오던 그에게 지난 2007년 슬럼프가 찾아 왔다. 3개월 방황 끝에 발견한 희망은 ‘처음 그 자리’였다고 한다.

 제자리로 돌아와 보니 더 튀고 싶은 욕심에 교만했던 모습이 보였다. 자만에 빠진 모습도 발견했다.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진 이후 일하는 즐거움은 두 배로 커졌다. 그래서일까. 점점 고객들에게서 칭찬의 소리가 들려왔다. 하루 25~30여 명의 고객이 줄을 잇기 시작했고, 디자인 파마가 장기인 그는 한 달 평균 900명 이상 만나고 있다.

“어려운 시기를 잘 넘겼기에 지금이 있다고 생각해요. 쉬는 동안에도 기다려 주고, 찾아 준 고객이 있어 사람이 재산임을 실감 했죠. 지금은 고정으로 찾아 주는 분들이 많은데 때로는 하루를 꼬박 기다리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럴 땐 죄송한 마음이 들어 만족스런 스타일이 나오게 더 정성을 들여요”

 요즘은 유치원생부터 80세가 넘는 어른까지 다양한 계층이 그를 찾는다. 그 점을 감안해 고객이 요구한 스타일을 최대한 추구한다. 하지만 아니다 싶을 땐 솔직 담백한 입담으로 거절하기도 한다. 무턱대고 TV 드라마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해달라는 고객도 있다. 헤어스타일은 자신의 얼굴형과 체형에 맞아야 눈길이 먼저 머물 수 있다고 설득하기도 한다. 가끔은 고집을 꺾지 못해 김씨와 고객 모두 낭패를 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고객 입장에서 최대한 생각하려고 한다는 김씨. 그는 “요즘 20대는 일자 단발, 30~40대 주부들은 단발 보브컷을 많이 한다. 매스컴의 영향 때문에 겨울인데도 오렌지, 레드, 브라운 등 밝은 색이 유행이다. 헤어스타일도 예술이다. 헤어 디자이너의 의지와 감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되고 유행을 퍼뜨리기도 한다.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이끌어 가는 것은 헤어 디자이너 몫이라 생각한다. 그 중심에 서 있고 싶다” 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이경민 객원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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