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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는女 노리고 대기탐" 아이돌 팬싸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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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8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 한 방송사의 아이돌 스타 프로그램 녹화 현장에 수천 명의 팬이 몰렸다. 그런데 일부 10대 팬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서로 다른 아이돌 그룹을 응원하는 팬들이 행사장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말다툼을 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곧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거치며 ‘팬클럽 전쟁’으로 확대됐다.

 9일 새벽 A 팬클럽 회원들이 B 팬클럽 회원들을 향해 컵라면과 생수병을 던졌다는 글과 함께 해당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이어 한 트위터 이용자는 B 팬클럽 이름을 거론하며 “지금 **형이랑 **형, 종합운동장역에서 혼자 가는 여성 강간하려고 대기탐(대기 중이란 뜻)”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단체로 강간이 벌어져 경찰 등이 3명을 검거했다”는 트윗도 올라왔다. 하지만 ‘강간’은 사실이 아니었다. 파장이 커지자 처음 글을 올린 트위터 이용자는 이날 오전 “루머 글이 점점 심각하게 퍼져서 일이 커졌네요.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또 일부 팬이 납치됐다는 루머가 돌아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잠실지구대 측은 “9일 오전 3시57분에 ‘15세 여중생과 연락이 안 되는데 납치된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와 잠실 실내체육관으로 출동했지만 조사 결과 여중생은 부산 집으로 무사히 귀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모든 일이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10대 팬들은 상대방 팬클럽 신상 털기까지 하며 여전히 논란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성숙하지 못한 10대 ‘팬덤(fandom·특정 인물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현상) 문화’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희대 이택광(영미문화) 교수는 “청소년들이 팬덤이라는 판타지에 몰입하며 집단 밖의 존재에 대해 배타심을 갖게 된 것”이라며 “‘강간’ ‘납치’ 같은 무리수를 둔 것도 집단 내 존재감 확인을 위한 자기방어적 기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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