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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부실대학, 현장에서 확인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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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교육과학기술부가 부실 대학을 추려내기 위해 활용해온 잣대가 대학들의 탈법 행태에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어제 발표한 전국 22개 부실 대학의 실태 보고서는 정부의 부실 대학 선정이 얼마나 주먹구구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대학들이 마음만 먹으면 부실 대학 선정에 쓰이는 각종 지표(指標) 값을 부풀리거나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사립대들이 신입생 수를 부풀리기 위해 지원 학과가 안 적힌 ‘백지 원서’를 수험생들에게 뿌리고, 면접 점수를 조작해 동점자를 늘려 모두 합격시키거나 교직원 또는 교직원 가족을 합격자로 등록시켰다. 신입생 충원율(모집인원 대비 등록생 수)이란 지표 값을 부풀려 부실 대학에서 빠지려 한 것이다. 또 전임교원 확보율(교원 정원 대비 전임 교수 수)이란 지표를 겨냥해 교육이나 연구 실적이 전혀 없는 사람을 전임 강사로 무더기 채용했다. 상당수 대학들이 전체 수업 일수의 4분의 1도 출석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학점과 학위를 주는 탈법 행위로 재학생 충원율(정원 대비 재학생 수)을 유지하려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지표 값이 나쁘게 나오면 대학은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선정되거나 학자금 대출 제한 조치를 당한다. 심한 경우 퇴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때문에 대학들은 어떻게든 지표 값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감사원이 이날 공개한 한 대학의 내부 문서에 따르면 이 대학의 처장은 전체 교직원들에게 “부실 대학 판정 기준은 신입생 충원율이므로 한 명당 한 장씩 백지원서를 돌려 미달 예상 학과의 신입생 확충에 사력을 다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교과부는 지표 값을 올리기 위해 학위 장사와 같은 탈법 행위를 한 부실 대학들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대학들을 우선적으로 정리해야 대학 구조조정을 순탄하게 추진할 수 있다. 또 객관적인 잣대인 양 맹신해 왔던 각종 평가 지표도 이번 기회에 재점검해야 한다. 감사원이 신입생 충원율 등 4개 지표를 가지고 22개 대의 수치를 재산정(再算定)해 보니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부실 대학이 오히려 교과부의 지원 대상이 됐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대학에 가는 돈은 국민이 내는 세금 아닌가. 교과부 공무원들은 대학이 제출하는 숫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현장에 가서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