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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중진국 함정에 빠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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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연초부터 벌어진 청와대발(發) ‘물가관리 소동’을 보면서 참 궁금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왜 이렇게까지 물가에 집착하는 걸까. 여의도를 바라보면 되는 일 하나 없이 너무 답답하기 때문에 그나마 경제부처가 자리 잡은 과천만 바라본다는 유머 섞인 시각이 있다. 정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지난해 치솟은 물가 때문에 국민에게 너무 미안해한다”며 선의(善意)의 해석을 내놨다.

 대통령이 밝힌 물가관리 책임실명제에 대해 ‘뭐,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렇다고 날 선 비판까지 받아야 하는진 잘 모르겠다. 김대기 청와대 경제수석은 “가격 통제가 아니다”고 해명했고 기획재정부도 평소에 미리 수급 상황 등을 잘 챙겨 필요하면 수입하거나 관세를 내려 책임 있게 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1년 전에도 비슷한 시도는 있었다. 지난해 1월 재정부를 비롯한 7개 부처는 매주 차관급 물가안정대책회의를 열어 물가를 챙겼다. 각 부처엔 물가안정책임관(1급)이 지정됐다. 이번에는 각 부처 물가책임관을 차관급으로 올리고 주요 품목·정책에 대해 국·실장-차관급 책임관을 별도로 지정한다고 한다. 정책실명제는 공무원의 책임의식을 높여 문제 발생 소지를 막을 수 있다. 이미 구제역 가축 매몰지 관리나 가축백신 접종관리에도 실명제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물론 물가관리를 위한 품목별 가격 상한선을 정한다든지, 물가가 오르는 이유는 각기 다른데도 품목별 물가관리의 경쟁구도를 만들어버리면 무리한 정책이 나올 수 있으니 이런 점을 경계하면 된다.

 정작 문제는 신년사에 나오는 대통령의 물가 인식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물가를 3%대 초반에서 잡겠다는 표현이 맘에 걸렸다.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밤중에 횃불 켜고 뚝딱거리는 식의 무슨 돌관공사(突貫工事)라도 하는 것 같다. 구체적인 수치까지 박아 넣은 건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이란다. 올해 정부의 물가 전망이 3.2%이니 ‘뭐가 문제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올해 어떤 일이 있을지 정책 당국자가 어찌 다 챙기고 대비할 수 있겠는가. 홍수와 이상기후, 이란사태 등 물가 위험 요인은 숱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대비하기 위해선 돈 많이 든다. 가능성 희박한 일에 완벽하게 대응하려면 할수록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게 확률원리다.

 선진국 물가는 상승률은 낮지만 이미 물가수준 자체가 높다. 반면 한국은 물가수준은 아직 참을 만한데 상승률이 높다. 지난해 7월 빅맥 가격을 보면 한국(3.5달러)은 미국(4.07달러)·호주(4.94달러)·캐나다(5달러)·유로지역(4.93) 등 선진국보다 낮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신년사에서 “올해 우리 경제는 이른바 ‘중진국 함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가려면 물가는 무조건 낮아야 하고 틀어쥐고 관리해야 한다는 편견부터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