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선거의 해, 갈등을 발전의 동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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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일 사망이란 급변사태로 마감한 2011년은 새로 맞는 2012년을 예고하는 듯하다. 새해는 세계적인 국가 리더십의 교체기다. 우리나라에선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4월)과 대통령을 뽑는 대선(12월)이 이어진다. 우리의 운명과 직결된 주변 강대국들 역시 권력 교체기를 맞는다. 미국과 러시아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고, 중국에선 후진타오(胡錦濤)의 뒤를 이어 시진핑(習近平)이 이끄는 5세대 지도부가 탄생한다. 그 사이 북한은 새로운 리더십을 뿌리내리면서 김일성 탄생 100년을 맞아 ‘강성대국’을 선포할 예정이다.

 같은 해에 한꺼번에 몰린 정치 리더십의 교체로 대내외적 환경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의 불안정은 우리의 운명과 직결돼 있다. 동북아 정세, 특히 중국의 역할 등을 고려해 볼 때 북한에서 단기간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핵을 둘러싼 논의가 상당히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북핵은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민족적 과제다. 미국·중국과 긴밀히 협력하는 가운데 북한의 온건 개혁파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국내외 경제환경 역시 매우 불안정하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국제경제에 짙은 암운(暗雲)을 드리우고 있다. 미국과 중국·일본은 물론 신생 동력으로 주목 받던 인도·러시아·브라질의 성장도 힘을 잃어가는 형국이다. 대외환경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 우리 경제에 대해선 ‘최악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종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주변은 어두운데 할 일은 산적해 있다. 산더미 같은 과제는 하나같이 근본적인 사회구조적 변화를 요구하는 중대 사안들이다. 2011년은 대한민국의 대수술이 얼마나 절실히 요구되는지를 보여준 한 해였다. 변화와 혁신에 대한 요구는 몇 차례 선거 과정에서 분명한 숫자로 확인됐다. 특히 지난 10월 서울시장 선거는 기존 정치권, 정치 리더십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확인해 주었다. 돌출된 ‘안철수 현상’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민심의 갈망이었고, 과열된 ‘나꼼수 열풍’ 은 답답한 현실에 대한 불만의 폭발이었다.

 역시 민심의 바닥을 관통하는 문제의 핵심은 경제다. 경제 양극화가 여론의 분열과 갈등의 심화를 가져온 근본 원인이다. 세계의 중심, 미국의 심장부인 맨해튼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외침은 우리 사회에서도 크게 공명했다. 이는 신자유주의 경제철학에 근거한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세계적인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 박정희 시대 이후 계속돼온 성장제일주의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소득 2만 달러에 진입한 성공모델이 이제 시대적 한계에 봉착한 셈이다. 새로운 국가발전모델, 새로운 정부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요체는 복지에 대한 요구다. 무상급식이란 이슈가 터져 정치판을 양분하고, 서울시장 선거를 뒤집고, 마침내 여당인 한나라당까지 복지 비상대책을 내놓게 만들었다. 성장의 그늘에 복지 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깔아야 할 때가 됐다. 현실적으로 서구 복지 선진국 같은 고비용·고복지 모델을 따라 할 수는 없다. 현재의 저비용·저복지에서 앞으로 중비용·중복지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복지를 뒷받침할 성장을 외면해선 안 된다. 내수와 일자리 창출로 성장의 동력을 삼는 동시에 성장과 함께 가는 ‘일하는 복지’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이란 필수 인프라가 ‘복지병’이란 난치병으로 덧나선 안 된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일하지 않는 복지’의 결과다.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재정을 위협하는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지혜가 절실하다. 정치인들이 빠지기 쉬운 포퓰리즘 유혹을 전 국민이 나서 감시해야 한다.

 새해 총선과 대선은 산적한 난제를 풀어가기 위한 여론수렴의 장인 동시에 개혁의 동력을 모으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동시에 선거는 정치권력을 다투는 싸움판이기도 하다. 그래서 선거 과정에선 갈등과 분열, 그리고 대립이 불가피하다. 소중한 민주주의를 가꿔가는 사회적 비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르는 것은 국민이 신성한 주권을 행사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의지가 여론이란 형태로 표출되고, 선거 결과로 반영되고, 당선자를 통해 구현된다. 마침내 성난 민심이 순화되고, 제도화됨으로써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되찾아주는 정화(淨化)장치가 선거다.

 이번 선거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심각한 만큼 격렬한 양태로 진행될 것이다.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대표되는 뉴미디어 시대에 격앙된 목소리는 더 넓고 크고 깊게 퍼져나갈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SNS를 이용한 선거운동이 자유로워졌기에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캠페인이 벌어질 것이다.

 부작용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 자체를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선거 과정에서 정치적 의사표현은 다양할수록, 활발할수록 좋다. 게임의 룰(Rule)만 확실하게 지켜지면 된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온갖 허위사실과 같은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은 엄격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룰을 어기는 후보에게 냉정한 심판을 내림으로써 주권이 왜곡 당하는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선거 과정에서 표출될 백화제방(百花齊放)의 목소리를 미래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선거 과정에서 갈등과 분열로 증폭된 민심이 선거 이후 봉합되지 못하고 또 다른 사회 불안의 씨앗이 되어선 안 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 되려면 갈등과 분열이 수습되어, 새로운 시대의 동력으로 모아져야 한다.

 우리가 직면한 과제는 국민적 합의 없이 불가능한,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들이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나라의 새 틀을 짜는 개혁안들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 그리고 선거 결과로 드러난 최종 민심에 승복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쪽에 투표했든 새 정부의 개혁에 힘을 보태야 한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환경은 분명 위기이지만 얼마든지 기회가 될 수 있다. 국가모델과 발전전략, 그리고 사회구조를 바꿔야 하는 심대한 개혁은 평시에 더 어렵다. 위기는 근본적 개혁에 대한 압박이자, 성공에의 의지를 키워내는 토양이다. 새해는 흑룡(黑龍)의 해, 임진년(壬辰年)이다. 승천하는 흑룡처럼 요동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하늘에 오를지는 우리 하기에 달렸다. 새해 벽두, 힘차게 땅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오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