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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 집배원은 인정, 고양이 구조 소방관은 퇴짜 왜?

중앙선데이

입력

순직한 고(故) 차선우 집배원(29·경기 용인우체국)이 지난 19일 우리나라 127년 우정 역사상 최초로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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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엔 어떤 사람들이 묻힐까. 최근 일부 인사의 안장 권한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실형선고를 받았던 안현태 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실장과 순직한 우편 집배원은 안장이 허가됐고 ‘고양이 구조대원’은 옥조근정훈장까지 받았으나 거부됐다.

지난여름 사망한 집배원 차선우(29)씨. 경기도 용인우체국에서 근무하던 그는 지난 7월 27일, 병가를 낸 동료를 대신해 배달을 나섰다 불귀의 객이 됐다. 폭우 속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배수로에 빨려 들어가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등기우편물 8통을 동료에게 전달하고 순직했다. 그에겐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됐고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집배원이 현충원에 안장된 것은 1884년 우정총국 개설 이후 127년 만에 처음이다.

반면 같은 달 순직한 속초소방서 소속 김종현(29) 소방관. 그는 강원도 속초시 교동의 한 3층짜리 건물 난간에서 애완 고양이를 구조하다 로프가 끊어지면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화재 진압이 아닌 ‘민원 업무’를 하다 숨졌다는 이유로 현충원 안장이 거부됐다. 현행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소방공무원의 국립 현충원 안장 대상을 ‘화재진압과 구조ㆍ구급 업무 실습훈련 중 순직한 자’로 한정하고 있다. 현재 일부 야당 의원과 포털 등에서 소방공무원의 일상 업무로 인한 출동 중 순직의 경우에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청원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03년 남극 세종기지에서 동료를 구하다 폭풍에 목숨을 잃은 전재규 한국해양연구원 소속 연구원. 그는 사후 3년 10개월이 지나서야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다.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상 안장될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후에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그는 2007년 7월 의사상자 등 예우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의사자로 인정돼 대전현충원에 묻히게 됐다.

국립묘지 안장은 유족과 고인을 위한 마지막 명예이자 예우다. 현재 우리나라에 설립된 국립묘지는 모두 8곳. 국립현충원(서울·대전)과 국립호국원(영천·임실·이천), 국립민주묘지(4·19, 3·15, 5·18) 등이다. 국립묘지란 점에선 같지만 유족들은 ‘격’이 다르다고 말한다. 서울현충원은 국립묘지 가운데 최고 예우의 장소다.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과 같은 헌법기관장과 순국선열, 애국지사, 참전용사 등이 잠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 현충원에 안장되는 것 자체가 영예로운 일”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은 제한된 공간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11월 말 기준으로 서울현충원은 32기, 대전현충원은 8281기 외에는 추가로 받을 공간이 없다. 이마저도 국가원수, 임정요인, 장군, 군인, 경찰로 묘역이 할당돼 있어 현충원 안장 자체가 ‘바늘구멍’이다.

1955년 세워진 서울현충원은 원래 참전군인들을 위한 국군묘지였다. 국립묘지로 개편된 것은 1965년. 이후 안장할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1985년 대전현충원이 건립됐다. 현충원은 국방부에서 관리를 해왔다. 그러다 2006년 대전현충원 관리는 국가보훈처로 이관되면서 현재는 서울현충원만 국방부에서 맡고 있다. 서울현충원엔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은식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등 18명의 임정요인, 국가유공자 등 17만51명(11월 말 기준)의 묘소와 위패가 안장돼 있다. 대전현충원엔 최규하 전 대통령,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 전사한 군 장병 국가유공자 등 9만9279명이 잠들어 있다.

재향군인회에서 운영하다 2007년부터 국가보훈처가 담당하는 호국원엔 전몰군경과 순직군경, 무공수훈자와 참전유공자, 10년 이상 현역으로 복무하고 장교나 준사관, 부사관으로 전역한 이들의 유해가 묻혀있다. 세 곳의 국립 민주묘지에는 4·19, 5·18 등 우리 역사상 이뤄진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과 부상자, 공로자 등이 안장된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당 자격(표 참조)을 갖추면 안장이 가능하다. 다만 국방부, 국가보훈처의 안장대상 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결격사유가 발생했는지 거르기 위해서다.

다음의 경우는 자격이 상실된다. 국적을 상실하거나, 복무 중 탈영하거나 변사한 경우다. 또 탄핵이나 징계로 파면 또는 해임된 경우, 심의위원회로부터 국립묘지 영예성을 훼손한다고 인정되면 제외된다. 범죄경력 조회 결과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도 거부된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지난 8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이던 안현태씨에 대해 대전현충원 장군묘역 안장을 허가했다. 뇌물수수죄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받았지만 사면 복권됐다는 이유에서였다. 한편 시신 안장 기간은 사망일을 기준으로 60년이다. 이후엔 법률에 따라 영구 안장 또는 위패 봉안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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