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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백만장자 TV 퀴즈쇼에 복 더위 잊은 프랑스인

중앙일보

입력

프랑스 전국이 백만장자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프랑스 TF1 방송의 ‘누가 백만장자가 될까’라는 50분짜리 퀴즈쇼 때문이다. 방송이 시작되는 매일 오후 7시 10분이면 가정에서부터 기업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TV 앞에 모여든다. 거리의 차들이 눈에 띄게 줄고 TV 수상기가 없는 카페는 손님이 뜸할 정도다.

6월 3일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3회째 방송부터 시청률이 40%대를 넘기더니 급기야 17일만에 50.4%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바캉스 철이면 파리 시내가 텅비다시피하는 프랑스에서 여름철이면 TV 시청 빈도가 낮아지는데도 단순한 퀴즈 프로그램이 이룩한 이같은 시청률은 거의 믿기 어려울 정도다. 피서지에서도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만큼은 놓치지 않고 보고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대성공에 방송사 관계자들도 “마치 매일 월드컵 축구 경기를 중계하는 듯하다”며 스스로 놀라고 있다.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은 제목에서 금방 드러나듯 ‘단숨에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엄청난 액수의 상금 때문이다.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모두 그렇듯 프랑스 TV에는 상금을 걸고 하는 퀴즈 프로그램이 많다. 6개의 공중파 방송에서만 10개 가까이 된다. 오전 시간대나 프라임 타임의 브라운관은 대부분 이들 퀴즈쇼가 장악하고 있다. 물건 값 알아맞히기서부터 그저 행운이 따라주기를 기대하며 무작정 찍는 요행수 게임에 이르기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누가 백만장자가 될까’의 상금에는 따라오지 못한다. ‘누가 백만장자가 될까’는 사지선다형 객관식 상식 문제를 차례로 맞힐 때마다 상금이 증가하는 단순한 게임이다.

퀴즈쇼의 도전자는 사회자가 던지는 15개 문제를 모두 맞힐 경우 3백만 프랑(약 4억8천만 원)
의 상금을 차지하게 된다.
첫번째 문제의 상금 1천 프랑에서 시작해 문제를 맞힐 때마다 상금은 배가 된다. 중도에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기권하면 그 때까지의 상금은 건질 수 있다.

게다가 세 번의 ‘조커’ 카드를 이용할 수 있어 상금을 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4개의 답중 틀린답 2개를 지워줘 찍기 확률을 50%로 높여주는 카드와 방청객들에게 물어볼 수 있는 카드, 정답을 알 만한 친지들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카드다. 하지만 만약 확실하지 않은 대답을 했다가 틀리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자인 장피에르 푸코는 늘 출연자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며 “그것이 당신의 최종 대답입니까”라고 묻는다. 이 말은 요즘 프랑스에서 최고의 유행어가 되고 있다.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손님이 점원한테 “그것이 당신의 최종 계산입니까”라고 우스갯소리를 던져 폭소가 터지는 장면도 종종 눈에 띌 정도다. 군데군데 함정이 있긴 하지만 문제가 까다롭지 않고 상식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도 인기의 한 요인이다.

“동화 ‘빨간모자’에서 늑대가 제일 먼저 삼키는 사람은 누구”, “구르는 돌에는 oo가 끼지 않는다”, “아넬카(프랑스의 축구 스타)
가 하는 운동은” 하는 식이다. 아직까지 최고액 3백만 프랑을 벌어간 행운의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쉬운 문제에 억대의 상금이 걸려 있다 보니 일확천금을 꿈꾸는 출연 희망자가 쇄도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돈을 버는 것은 다름아닌 TF1 방송이다. 퀴즈쇼 출연 희망자는 분당 3.68프랑인 특정 유료 전화로 신청을 해야 한다. 그중 1.67프랑은 TF1의 몫이며 상금 전액이 이 전화료에서 충당된다.

방송사측은 전화료 수입이 총 상금 액수에 못미칠 것에 대비, 보험까지 들어뒀지만 보험사가 손해볼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TF1은 대신 전화료 수입이 상금 액수를 초과할 경우 그 차액을 사회단체에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언뜻 “얄팍하게 수입을 챙기지는 않겠다”는 점잖은 태도로 보이지만 막대한 광고료 수입만으로도 TF1의 배는 충분히 부를 수 있다. 프로그램 중간중간 나가는 30초짜리 광고 요금은 최고 39만3천 프랑이나 된다. 이것 역시 퀴즈 프로그램 광고료로서는 최고 기록이다.

TF1 방송은 이 퀴즈쇼를 7월 31일 대형 특집방송으로 꾸민뒤 잠시 중단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방송사측 설명이다. 하지만 30분만에 운명을 바꿔보려는 많은 사람들이 복권이나 카지노보다 확률이 높아보이는 이 게임을 기다리기에 연말까지는 너무 긴 시간이다.

그래서 방송이 잠시 중단된 사이 경쟁 방송국에서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TF1의 고민이다. 사람들에게는 평생 벌어도 모으지 못할 거액을 받느냐 못받느냐가 중요하지 그 돈을 어느 방송사에서 받느냐는 결코 관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파리 특파원·for N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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