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불안해 일에 더 매달려” 직장인 55%, 가정보다 일 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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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요? 글쎄, 일주일에 두 끼 정도…?”

 대기업 직장인 박경배(40)씨는 일주일에 사나흘은 야근을 한다. 평일엔 가족들과 함께 밥 먹는 일이 거의 없다. 아이 학교 행사도 거의 참석해본 적이 없다. “당연히 가정보다 일이 먼저죠. 가장이니 어쩔 수 없죠.” 외벌이인 박씨는 어깨가 무겁다. 혹시라도 회사를 그만두게 될까 두렵다. “저 하나 버는데 회사를 그만두면 가정이 무너지는 거죠. 스트레스 물론 큽니다. 자연히 일에 온 힘을 쏟게 되고요.”

 직장이 불안하다. 그래서 일에 더 매달린다. 가정은 뒷전이다. 한국 직장인들의 불안한 자화상이 통계에 고스란히 담겼다. 통계청의 2011년 사회조사 결과다.

 조사에 참여한 직장인 중 열에 여섯(59.9%)은 “직업(직장)에 대해 불안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남성(62.4%)이 불안감이 더 심했고 젊을수록 더 심했다. 가장 불안감이 심한 세대는 30대였다. 65%가 “불안하다”고 답했다. 50대는 56.2%가 불안해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손민중 연구원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평생 직장이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한 세대”라며 “육아 비용이 점점 많이 들면서 직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것”이라고 분석했다.

 심한 경쟁과 불안정한 노동 시장. 그래서 더 일에 파고드는 걸까. 직장인 절반 이상(54.5%)이 “가정보다 일을 우선시한다”고 답했으며 “둘 다 비슷하다”(34%)가 뒤를 이었다. “가정이 우선”이란 이들은 열에 한 명 남짓(11.5%)에 불과했다. 특히 남성 직장인(62.6%)들이 일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여성 직장인은 “일을 우선시한다”(42.4%)가 “둘 다 비슷하다”(41.2%)와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

 불안함이 없는 직장, 국가기관과 공기업에 대한 인기는 여전했다. 13~29세 청년들에게 “어떤 직장을 선호하느냐”고 물었더니 국가기관(28.7%)과 공기업(15.6%)이 각각 1, 3위를 차지했다. 2위는 대기업(21.6%). 번듯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높은 것이다.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도 돈과 안정성이었다. 직업을 선택할 때 “적성이나 보람, 장래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25.6%에 불과했다. 대신 수입(38.3%)과 안정성(29.2%)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훨씬 많았다. 10대 응답자의 39.4%가 “적성과 흥미를 고려해 직업을 택하겠다”고 답한 반면, 50대 응답자의 43.7%가 “수입을 보고 골라야 한다”고 답했다. 전주대 상담심리학과 김명식 교수는 “한국인들의 관심사가 온통 ‘어떻게 먹고사느냐’에 쏠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라며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는 가치관이 사회 전체에 팽배해 ‘나는 돈을 많이 못 벌 것 같다’는 젊은이들은 패배감에 사로잡히곤 한다”고 지적했다.

 고령화와 관련해서도 가장 중요한 화두는 역시 ‘돈’이었다. 60세 이상 노인에게 “가장 어려운 점이 뭐냐”고 묻자 ‘경제적인 어려움’을 꼽은 이가 열에 넷(40.6%)꼴이었다. 건강(37.8%)보다 돈이 더 걱정이라는 것이다. “소일거리가 없다(6.2%)”거나 “외롭다(3.7%)”는 고민은 사치로 여겨질 정도였다.

임미진·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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