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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여자란 왜’] 여자가 정치에 눈뜰 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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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한 사람에게 정치의식이 생기려면 사무치는 경험과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남들 따라 의로운 척 행세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자신이 그 문제에 어떤 형태로든 얽히거나 개입한 경험이 있어야 개선의지가 더 단단해진다. 또 약자를 향한 공감 능력이 있어야 사익 추구를 위한 정치를 넘어설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여자들은 사회적 약자니까 여러 부당한 면면에 더 깊이 분개하고, 여성 ‘특유’의 공감 능력으로 보다 넓게 이웃을 포용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게 꼭 또 그렇지만도 않다.

 가령 사무치는 경험은 약자일 때 느끼는 건데 여자가 강력한 가부장의 보호를 받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험한 세상에 직접 대응할 필요 없이 가부장의 권위에 기대 그가 일러주는 정치의식 혹은 보신술을 따르면 대개는 안전했기에 정치에 무지해도 되었다. 또한 ‘엄마의 마음’으로 사회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아우를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남의 자식은 결코 내 자식이 아님을 깨닫기라도 하면 대책이 안 선다. 정치가 아니라도 어차피 고민할 것도 많은 세상. 게다가 사회적으로 ‘좋은 여자’로 인정받는 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작금의 ‘나꼼수’ 열풍으로 언뜻 여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시원스레 욕도 제법 잘 따라 한다. 그것이 ‘트렌드’의 일환인지 개인적 스트레스 해소인지 혹은 진정한 사무침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기왕 이게 ‘여자가 정치에 눈뜬’ 시점이라면 부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눈이 아니기를 바란다. 골라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No’를 표명한 것 자체에 이미 만족하며, 그렇다면 뭐가 ‘Yes’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이 역시도 또 다른 이름의 가부장에게 ‘말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임경선 칼럼니스트·『어떤 날 그녀들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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