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 액션 블록버스터 〈여간첩 리철순2〉

중앙일보

입력

성인비디오시장의 선발주자인 유호프로덕션이 그 동안의 침체를 만회하기 위해 공들여 내놓은 작품이 있다. 〈여간첩 리철순 2〉1편에 비해 화면 곳곳에서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다.

우선 스케일면에서 기존 어떤 성인비디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초특급 에로 액션 하드고어 블록버스터' 라는 비디오 표지의 수식어에는 못 미치는 게 사실이지만, 전투신 등 액션씬에서의 연출은 과감하고 만족스럽다.

제법 많은 돈이 들어갔을 법 한 장면들이 투자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하기도 한다. 좀처럼 큰맘을 먹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장면들이 과감하게 연출됐다는 사실에 먼저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찬사의 박수 뒤에는 늘 남는 아쉬움이 있다.

그것이 매너리즘인지, '대강 철저히' 식의 안일함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이지만 쓴소리를 하지 않고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 대강의 줄거리는, 1편에서 대한민국에 귀순해 행복하게 살고 있는 리철순에 대한 북한 공작원들의 암살로 전개된다.

리철순을 암살하라는 특명을 받고 투입된 필호는 과거 리철순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훈련을 받던 동지이다. 그는 또 리철순에 대한 사랑을 아직까지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순정파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리철순 암살 지령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리철순은 자신을 조여오는 죽음의 그림자가 필호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자수를 권한다. 이념과 사랑 속에서 갈등하던 필호는 결국 끝내 리철순을 암살하지 못한 채 아지트에서 남측 요인들과 총격전 끝에 비참한 종말을 맞고 만다.

이제 쓴소리 좀 하자.

〈여간첩 리철순 2〉의 시나리오는 간단 명료, 그리고 누구나 예측가능하다. 액션과 에로를 표방한 작품에서 탄탄한 시나리오는 뒷전에 두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장면 장면마다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빗나간 설정이 눈에 띈다.

리철순의 암살을 지령받는 과정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독기어린 눈으로 부르는 노래는 다름아닌 '반갑습니다'. 이 노래는 상식적으로도 전투적 기질에 어울리지 않는 노래다. 북한에서도 이 노래는 인민가요로 대개 환영의 뜻을 표할 때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북한에 대해 공개된 자료를 현실적으로 찾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 부분은 분명 넌센스이다. 그리고 무성의함이다. 또 귀순한 북한 공작원들이 암살되는 과정 역시 스토리 전개에만 급급해 설득력이 부족하다.

정부요원들에 의해 24시간 보호를 받고 있는 귀순자들은 주로 집 앞 골목에서 어이없이 총에 맞는다. 경호원들은 주위도 살피지 않고 그저 나란히 동행하는 것이 임무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게다가 집중 보호를 받아야 될 리철순은 경호원 두 명을 양옆에 대동한 채 암살의 노출이 심한 대로 횡단보도에 유유히 서 있기도 하다. 스릴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힘든 대목이다. 한가지 더 꼬집자면 배우들의 연기이다.

리철순역의 이시아를 제외하고는 역량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북한말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최소한 비슷한 억양이나 간단한 말투 정도는 일반인도 흉내내는 현실인데 그것조차 어설프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섞은 듯한 사투리를 북한식 억양으로 구사하는 건 또 뭔가. 마지막으로 시기의 부적절함이다. 이 부분은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 비디오가 나온 시점이 한창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되고, 북한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바뀌어 가는 시점이었다는 것을 보면 시대적 요구를 무시한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영화로서 갖는 창작의 자유는 인정한다. 또 제작당시에는 남북정상회담 같은 특보를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건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려 해도 알려진 것이 너무 없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 부분은 유호프로덕션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재료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운대가 안 맞았다.

비록 때를 잘못 타고 태어난 비디오지만 과감한 투자와 장르를 넓혔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같은 시도가 어려운 제작여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용기의 대단함마저 느껴진다.

새로운 시도는 늘 반가운 것이고 힘을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빗나간 운마저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이 작품이 솔찮게 나간다니 유호측에 조금은 위안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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