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산악연맹 김병준 전무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우리의 산사나이 엄홍길씨가 드디어 대기록을 수립했다.

히말라야 8천m 14좌 완등은 올림픽 금메달처럼 짧은 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엄홍길씨는 히말라야 원정에 참가했던 1985년 이후 15년 만에 이를 해냈다. 국내 산악계에 '자이언트 봉(峰)' 시대를 연 고(故) 고상돈 대원의 77년 에베레스트 등정부터 치면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단 한차례 원정만으로도 진이 빠져 포기하고 마는 히말라야 등반을 엄씨는 모두 28차례나 도전해 절반인 14번 정상에 올랐다.

이 대기록은 뼈를 깎는 인내와 피눈물나는 노력, 그리고 목숨을 건 도전 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함께 고통을 나눈 가족과 동료 산악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등산장비 업체.후원자들의 숨은 공이 컸고 히말라야의 여신이 도왔다.

도봉산 자락에서 자라나 설악산을 누비던 청년시절 이후 엄홍길씨는 자신의 꿈을 위해 냉엄한 대자연 속에서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을 계속해 왔다.

14좌 완등 과정에서 동료 7명을 잃었으며 자신도 여러 차례 생사의 넘나들었다. 그리고 소박하고 인간미 넘치는 엄씨는 불혹의 나이가 되어 마침내 꿈을 이뤘다.

그동안 3백개가 훨씬 넘는 한국 원정대가 히말라야로 향했다.
한국인의 진취적 기상을 널리 알린 원정대도 있지만, 적지 않은 산악인들을 히말라야에 묻는 가슴 아픈 희생도 있었다.

40여명의 한국의 젊은이들과 우리를 돕다 희생된 40여명의 셰르파들이 아직도 히말라야에 묻혀 있다. 엄씨의 대기록은 이러한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한층 소중하다.

올해도 전국 도처에서 젊은 산악인들이 상당수 히말라야로 출발했다. 그리고 상반기가 지난 현재까지 1백% 성공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죽음을 부르는 산' 으로 악명 높은 K2에서도 올해 영.호남팀 8명과 한국산악회 대구지부팀 1명, 엄홍길팀 5명 등 모두 14명의 한국인이 등정에 성공했다. 엄청난 쾌거다.

엄씨의 뒤를 이어 박영석씨도 이번에 브로드 피크를 올라 12개봉을 등정했고, 엄씨와 함께 K2를 오른 한왕룡 대원은 10개봉에 올랐다.

이들 두 사람도 1~2년 이내 완등자의 반열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청춘을 바쳐 숱한 고행의 가시밭길을 이겨낸 엄홍길씨의 승리에 진심어린 축하를 보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