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위장펀드’ 만들어 상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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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국세청이 거액의 증여·상속세를 물지 않고 경영권을 자녀에게 넘긴 중견기업 10곳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13일 “해외펀드나 국제거래를 위장하는 수법으로 증여·상속세를 탈루한 것으로 의심되는 중견기업 10곳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대상 기업은 전자·기계·의류제조·해운 등의 업종에서 연간매출액 1000억~5000억원대에 달하는 중견기업이다. 이 중 2곳은 상장사로 알려졌다.

 이들 중견기업은 창업 1세대에서 2세대로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탈세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해외 조세피난처에 자녀 이름으로 펀드를 만든 뒤 국내 관계회사의 주식을 헐값에 넘겨 세금 없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방법 등을 이용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최근 국내 기업인이 세무사 등의 조언을 받고 이러한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시도하고 있다”며 “해외 과세 당국과 조세정보를 교환하는 국제 공조 등을 이용해 이들의 탈세 여부를 가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올 하반기 세무조사의 역점 분야 중 첫 번째로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 차단’을 정했다. 편법적인 부의 세습이 국민에게 박탈감을 심어줄 뿐 아니라 기업의 지배구조를 왜곡한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지난달 초에도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중견기업가 11명에 대해 2783억원을 추징하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국세청은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을 통해 편법 증여가 이뤄지고 있다는 첩보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국세청은 미신고 해외 금융계좌에 대해서도 기초조사를 벌이고 있다. 10억원 이상의 국외 금융계좌를 스스로 신고하지 않은 자산가 40여 명이 대상이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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