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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세일즈(John Sayles), 미국 인디 영화계의 살아 있는 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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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작〈메이트원〉은 존 세일즈 감독의 대표작으로 단연 첫 손에 꼽히는 작품이다. 1920년대 웨스트 버지니아 탄광마을에서의 노조 결성 과정과 그에 따른 학살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영화 감독 존 세일즈의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즉 이 영화 속엔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관계와 대립이 담겨 있는가 하면, 또한 이상을 성취하려 투쟁하는 인간들을 바라보는 세일즈의 공감어린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

존 세일즈의 영화들은 굳이 한 마디로 말하자면, 동시대 미국이란 사회에서의 삶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세심한 탐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미국 영화계에서 보기드문 이 사회적 양심의 소유자는 당연하게도 자신의 영화들을 통해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이런 저런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언급한다.

그건〈메이트원〉처럼 꼭 다소 직설적인 방식을 취할 필요는 없다.〈패션 피쉬〉같은 다른 영화의 예를 들어보자면, 이 영화는 분명 하반신을 완전히 못 쓰게 되어 절망에 빠진 전직 TV 연기자와 역시 내면깊은 곳에 고통을 안고 사는 간호사 사이의 우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다. 세일즈는 이 영혼의 거듭남을 감동적으로 어루만지면서도 또한 영화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인종문제, 계급문제, 그리고 세대문제를 이야기한다. 그런 이슈들은 이야기의 순조로운 진행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곁가지들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것들을 이야기하지 않고 어떻게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영혼에 대해 이야기한단 말인가?

미국 사회의 정치 사회적 영역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혹은 동시대의 '문제영화'(problem picture)를 만든다는 점에서, 세일즈는 종종 올리버 스톤과 비교되곤 한다.〈7월 4일생〉같은 영화에서 보듯, 올리버 스톤의 방식은 항의하듯 목청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음모 이론 같은 유행 담론을 끌어들여〈JFK〉에서 그랬듯, 논쟁의 파장을 넓혀보고자 한다. 반면 세일즈는 정치적 이슈를 이야기하되 결코 자신의 주장을 부르짖지도, 그리고 떠들썩한 논쟁에 불을 지피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세밀한 탐구로부터 정치적 문제가 서서히 배어 나오게 한다. 세일즈는 선동가라기보다는 관찰자 쪽이다.

세일즈는 한 편의 영화에 다수의 인물들을 모두 관련시키는 방식, 이른바 '앙상블 어프로치'(ensemble approach)라고 부를만한 방식을 선호한다. 예컨대, 1919년 화이트 삭스 프로야구 팀의 승부조작 사건을 영화화한〈에잇 맨 아웃〉에서 우리는 세일즈의 그런 접근 방식으로 인해 월드 시리즈에 고의로 져 달라는 부탁을 받은 선수들 각각이 이 요구에 반응하는 태도와 그 이유들에 대해 들을 수 있게 된다.

군상화(群像畵)를 그리는데 있어서〈꿈꾸는 도시〉는 한발 더 나아간다. 세일즈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야심만만하다고 평가받는 이 영화는 무려 30명이 넘는 인물들을 따라간다. "나의 주 관심사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들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그 자신이 말한 바 있듯이, 이건 무엇보다도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주고자 함이다. 인간이 고안해 낸 개념으로 파악되는 추상적 현실(정치관계 같은)은 어쩌면 구체적인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유래할 수 밖에 없는 부수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조건을 가능한 진실하게 그리려 한다는 점에서 세일즈는 리얼리스트이다. 그렇기에 그의 영화들은 현실의 신산함을 드러내면서도 소박하나마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진실이 있음을 저버리지 않는다(이를테면, 도시에 희망이란 없다고 외치는 듯한 영화〈꿈꾸는 도시〉에서도 "옳은 것을 대변해야 해"와 같은 대사가 오래도록 우리의 귀에 울린다). 어쩌면 이건 그가 존 카사베티스와 더불어 미국 인디 영화의 상징으로 꼽힌다는 사실과 함께 세일즈가 '구식 영화'를 만드는 구세대 감독이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지표일 수도 있다. 확실히 그의 영화들은 '선댄스 키드'들의 화려한 수사나 번득이는 재기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대신 세일즈의 영화들에는 진실을 찾는 진지함과 곰삭은 통찰이 두드러진다. 그것들은 확실히 신세대 인디 영화 감독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질이다.

주요 작품

1980년 〈시코커스 7인의 귀환 Return of the Secaucus Seven〉
1982년 〈베이비 온리 유 Baby It's You〉 (비디오 출시)
1983년 〈리아나 Lianna〉
1987년 〈메이트원 Matewan〉
1988년 〈에잇 맨 아웃 Eight Men Out〉 (비디오 출시)
1991년 〈꿈꾸는 도시 City of Hope〉 (비디오 출시)
1992년 〈패션 피쉬 Passion Fish〉 (비디오 출시)
1996년 〈론 스타 Lone Star〉 (비디오 출시)
1999년 〈림보 Limbo〉 (비디오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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