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스’에선 맘씨 착한 게이머만 살아남는다!

중앙일보

입력

에버퀘스트는 ‘사람은 절대로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교훈을 주는 게임이다. 혼자 사냥에 나섰다간 차가운 땅바닥에 큰 대(大)자로 드러눕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에서의 자신 이외에 또 다른 나를 갖기를 원한다.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그 게임 속 아바타(Avatar: 분신)로 다른 사이버 캐릭터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이루어 살아가며 자신의 또 다른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현실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공동체가 좋은 사회가 되는가 아니면 시기와 질투, 증오가 들끓는 사회가 되는가는 마치 현실에서 정부가 사회를 어떻게 컨트롤하느냐에 따라 국민의 생활 수준이 좌우되듯 게임 역시 제작사가 온라인 세상을 어떻게 만들고, 컨트롤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면 버렌트 인터랙티브(에버퀘스트의 제작사)에서 창조한 신비의 대륙 노라스(Norrath:에버퀘스트의 배경이 되는 대륙)는 과연 좋은 사회일까?

에버퀘스트는 AD&D(Advanced Dungeon & Dragons)라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롤플레잉의 전통적인 룰을 따르고 있다. AD&D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끝이 없으므로 그저 롤플레잉의 한가지 게임 방식 정도로 알고 접어두도록 하자. 온라인 상에 접속하면 게이머는 아바타를 자신의 취향에 맞게 설정해야만 한다.

먼저 아바타의 종족과 직업, 능력치, 종교 등 자신의 캐릭터 속성에 대해서 설정해 주고 자신이 게임을 시작할 도시를 선택해 주면 노라스 대륙의 한 시민으로 살아갈 준비는 끝난다. 이런 류의 게임을 처음 접하는 게이머들에게는 캐릭터 설정 자체가 난관이라고 생각될지 모르나 이건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안에 들어가서 각 클래스 간의 역할 분담, 퀘스트의 해결 등 게임 안에 들어있는 복잡한 시스템들을 배우려면 정말로 그 안에 살림(?)을 차리지 않고서는 그 방대한 게임의 일부분도 이해하기 힘들다.

에버퀘스트의 생활에서 걸어다녀야 할 일은 거의 없다. 아니 걷는 옵션이 왜 있는지 조차 궁금할 정도로 걸을 일이 없다. 캐릭터를 2배로 빨리 뛰게 하는 SOW(Spirit Of Wolf)라는 마법을 사용하고 뛰어다녀도 노라스 대륙은 하루만에 모두 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이러한 대륙을 걸어서 간다는 것은 레벨링(캐릭터의 레벨을 올리는 일)을 위하여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시간 낭비다.
워낙 방대한 대륙을 뛰어가다 보니 한 서버에 1천명이 넘게 있어도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어떤 곳에서는 30분 동안 뛰어가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하는 곳도 존재한다(‘엄마 난 달려야 해요’라는 광고 카피가 저절로 나온다).

에버퀘스트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사람은 절대로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교훈을 준다는 것이다. 각 클래스(직업)별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서로 다르고, 상호보완적이기 때문에 다른 클래스와 그룹을 만들어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솔로잉(soloing: 홀로 사냥을 하는 일)을 하다가는 차가운 땅바닥에 큰 대(大)자로 눕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안에서 절대로 악하게 살아갈 수가 없다. 자신이 아무리 레벨이 높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에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다른 클래스의 게이머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에버퀘스트를 하는 도중에는 자신의 캐릭터가 레벨이 높다고 남들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서로 돕고 의지하지 않으면 노라스에선 불편한 삶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에버퀘스트가 처음 출시되던 시절, 울티마 온라인은 세계 최고의 온라인 게임으로 그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었다. 모두들 당분간 울티마 온라인의 인기를 누를 게임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름 없는 개발사가 내놓은 에버퀘스트는 세인들의 예상을 깨고 불과 몇 개월 만에 울티마 온라인의 인기를 훌쩍 뛰어넘는 세계 최고의 온라인 게임으로 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나라 게이머들에게 에버퀘스트라는 이름이 매우 낯선 까닭은 게임이 국내에 정식 출시되지 않았던 까닭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인터페이스에 있다. 게임의 모든 진행이 영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어를 모르면 게임을 전혀 진행할 수가 없다. 물론 게임 상에서 사용되는 영어는 거의 기초회화 정도의 수준만 할 줄 안다면 아무런 불편함 없이 진행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은 비영어권 국가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또한 모든 대금이 외국에서도 사용 가능한 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도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현재 에버퀘스트는 사이버 세계에서 자신의 또 다른 삶을 3D로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판타지 게임으로 많은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게임에서의 생활이 실제 생활과 같다면 게임을 즐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에버퀘스트에는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판타지의 꿈을 게임에서나마 실현시켜 주는 매력이 있다. 현실 세계에서 용을 보고 싶다는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며 에버퀘스트를 플레이해 보라! 에버퀘스트에 등장하는 용은 그 용에게 죽임을 당할지언정 볼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