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째 크리스마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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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호 30면

아무래도 다시 한번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될 것 같다. 이번이 아홉 번째다. 한국에서의 크리스마스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좋아지고 편해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2002년 한국에서 보낸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기억한다.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맞이한 크리스마스였다. 스물세 살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석 달 전에 한국으로 왔다.
다행히 당시 나는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낼 친구를 몇 명 사귀었다. 외로운 여행자에게 친구는 생명줄과 같다. 가족과 떨어져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은 힘들었다. 나와 같은 처지의 다른 외국인 친구들마저 없었더라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사실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가족 없는 크리스마스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당시 나와 친구들은 작은 원룸에 모였다. 우리는 고향과 부모·형제를 생각하며 소주를 마셨다. 캐럴을 부르며 크리스마스를 축하했다. 무료 인터넷전화 스카이프와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용산 기지에서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저녁식사를 주문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었지만 한국에서 보내는 첫 크리스마스는 힘들었다. 고향이 그리웠다. 눈물이 났다. 크리스마스는 사랑과 순수의 상징이고, 가족과 기쁨을 위한 시간이다. 가족과 함께 벽난로 앞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낮잠을 자고, 서로 껴안고, 편하게 축구 경기를 보는 시간이다. 크리스마스 캐럴과 종소리, 웃음소리와 포옹, 파이와 에그노그(칵테일의 한 종류),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받은 선물더미가 떠오르는 날이다. 두터운 겨울옷을 입고 좋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베러 나무 농장에 가는 일은 즐거웠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온갖 크리스마스 장식을 풀어놓았다. 전구, 공, 장식용 반짝이, 천사, 별….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다. 우리 집은 흡사 작은 북극이 됐다.
당시 원룸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나는 고향에서의 크리스마스를 그리워했다. 가족과 친구들과의 추억도. 괴로웠다. 건배!

그러나 이제 크리스마스에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고향에서의 크리스마스를 그리워하면서, 동시에 크리스마스의 가치가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크리스마스는 지나치게 상업화됐다. 크리스마스가 반짝이는 장식물로 더 화려해지는 동안 진짜 빛은 잃어가고 있다. 사랑을 증명하고 과시하기 위한 선물을 사느라 신용카드 명세서만 쌓여 간다. 물질을 강조하면서 사랑은 멀어져 간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크리스마스 때 인근의 생활용품 할인점 다이소에서 작은 가짜 크리스마스트리를 살 뿐이다.
한국인은 미국인처럼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백화점을 제외하면 크리스마스 전구·캐럴·장식품들이 미국보다 훨씬 간소하다.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선물을 하고,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미국보다 약하다. 아마도 크리스마스가 가족보다는 연인과 친구를 위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터다. 대신 한국인들은 추석 때 부담을 느낀다. 추석이면 가족 간의 사랑과 기쁨을 표현해야 한다는 압박과 스트레스에 힘들어한다.

나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고향의 가족을 그리워할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항상 눈이 내리는 작은 마을, 뉴햄프셔를 떠나 있는 일이 슬프다. 크리스마스가 상업화의 산물일 뿐이라고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이맘때면 고향의 가족과 친구가 더 생각난다. 슬프고 외롭다. 아직 나는 여기까지다. 한국에서 맞는 크리스마스에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앞으로는 편해질 수 있을지, 여전히 모르겠다.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 건배!



미셸 판스워스 미국 뉴햄프셔주 출신. 미 클라크대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아트를 전공했다. 세종대에서 MBA를 마치고 9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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